손님들

십년감수(十年感秀)_소설

 

 

손님들

 

김숨

 

 

 


1

 

   손님들은 세 명이었지만, 여섯 명으로 보이기도 했고 아홉 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단’ 한 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물론 세 명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손님들은 세 명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쩌면.
   손님들은 세 명이 아닐 수도 있었다. 손님들이 세 명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섯 명일 필요도, 아홉 명일 필요도 없었다.


   손님들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처럼 외투를 입고 있었다. 검은 주머니가 양쪽에 달려 있는 외투였다. 주머니는 흡사 성경책 같았다. 손님들은 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넣고 있었다. 그녀는 손님들이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구역에는 비슷한 모양의 단층 양옥집들이 수백 채 몰려 있었다. 여자의 집도 단층 양옥집들 중 하나였다. 손님들은 그녀의 집을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당신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손님들은 동시에 입을 벌려 합창을 하듯 말했다.
   그녀는 결국 손님들을 집에 들일 수밖에 없었다. 손님들은 그녀에게 ‘당신의 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손님들을 기억해내려고 했지만,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손님들은 거실 소파로 가서 앉았다. 소파는 4인용이었지만 손님들은 경직된 자세로 바짝 서로의 어깨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손님들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정면을 응시했다. 정면은 벽이었고, 벽은 격자무늬 벽지로 뒤덮여 있었다. 손님들의 눈동자들은 압핀을 박아넣은 듯 고정되어 있었다. 입들은 일자로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손님들이 찾아왔을 때, 그녀의 집 거실 벽면에 걸린 괘종시계는 두 시에서 세 시를 지나고 있었다.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에, 그녀는 주로 낮잠에 들어 있었다.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을 것이다. 시체처럼 떠오를 때까지. 여섯 시가 되어서야 깨어나 저녁쌀을 씻어 안치고 생선을 구웠을 것이다. 어두워져 가는 부엌에서 생선의 뼈를 바르고 있었을 것이다. 살이 마르고 말라 푸른 심줄이 툭툭 불거져나온 손가락으로…… 발라낸 뼈를 집어들어 어둠 속에 던졌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흰빛을 발하는 생선의 뼈는 고생대나 중생대에 살았던 어류의 뼈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님들이 앉아 있는 소파와 다섯 발짝 떨어진 곳에는 안락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안락의자로 몸을 움직여 갔다. 안락의자에 몸을 앉혔다. 그녀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그녀가 흔들리고 있는 안락의자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님들은 외투를 벗지 않았다.

 

   손님들은 정물화에 적합한 사물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손님들이 ‘당신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당신의 집을 찾아온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새삼 떠올렸다. 그녀는 계속해서, 규칙적으로, 두통을 동반한 현기증을 느끼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그녀가 흔들리고 있는 안락의자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님들은 그녀를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그것 때문에 손님들이 완전해 보였다. 그리고 오로지 그것 때문에 손님들은 도덕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손님들은 무심하고, 인격적인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손님들이 그녀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 그녀가 손님들을 의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의도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혹되었다. 그러나 의도되고, 의도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을 찾아온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손님들은 일관되게 그녀를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미혹을 두려워하고 멀리했다.

 

   그녀는 손님들과 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손님들과 전혀 다른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격리’의 느낌이 손님들과 그녀 사이에 투명한 유리 칸막이처럼 가로놓여 있었다.

 

   그녀는 손님들을 집에서 내쫓는 것이 새장 속 죽은 새를 버리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처럼 보였다. 간단한 일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녀는 굳이 손님들을 집 밖으로 내쫓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불현듯 ‘관계’가 궁금해졌다. 그녀 자신과 손님들의 관계가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손님들의 관계. 손님들은 혈육으로 엮인 자매들 같기도 했고, 종교로 엮인 자매들 같기도 했으며, 이념으로 뭉쳐진 혁명가들 같기도 했다. 한 손님은 20대 초반으로, 또 한 손님은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그리고 또 한 손님은 적어도 여든 살은 되어 보였다. 손님들은 머리 색깔도 달랐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손님은 짙은 검은색이었고,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손님은 갈색이었으며, 적어도 여든 살은 되어 보이는 손님은 빛나는 금발이었다. 손님들은 피부색도 확연히 달랐다. 몸집도 불균형을 이룰 만큼 차이가 컸다.

 

   손님들을 ‘집단’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모직으로 짠 긴 외투뿐이었다. 외투는 동유럽의 허공처럼 칙칙하고 우울한, 전체적으로 불분명한 빛깔을 띠고 있었지만 손님들을 ‘집단’으로 묶어주는 강렬한 기운을 풍겼다. 그리고 손님들을 어딘가 결벽적이고 지적으로 보이게 했다.

 

   손님들은 여전히 외투를 벗지 않고 있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손님들이 지금 그녀의 집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손님들의 시선은 벽지 격자무늬의 여러 지점들로 분산되다가, 어느 순간 한 지점에 모아졌다. 격자무늬는 철저하게 원칙과 질서로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아졌다. 그녀는 당황했다. 여섯 개의 눈동자가 한꺼번에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그녀의 집 거실에 폐수처럼 흘러들었다. 손님들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손님들의 눈동자 흰자위들이 죽은 물고기들처럼 떠다녔다. 그녀는 격자무늬의 ‘반복’을 더듬어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냈다.
  적발되듯, 손님들이 형광등 불빛 위로 떠올랐다.

 

 

2

 

   “우리는 당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손님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철거로부터.”
   손님들 중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철거라면……”
   그녀는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거실 창 쪽으로 몸을 움직여 갔다. 녹색의 부직포 커튼을 펼쳐 창을 가렸다. 안락의자가 저 스스로 흔들리고 있었다.

 

 

3

 

   그녀도 철거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에 철거가 선고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난과 질병과 범죄로 찌든 구역에서만 이루어지던 철거가 다른 구역들로 확산되고 있었다. 모범적이고 질서 있게 조성된 구역들도 철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철거는 철저하게 ‘집’만을 대상으로 했다. 도시에 단 한 채의 집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철거는 중단 없이 진행될 거라고 했다. 지은 지 백 년도 더 된 집이, 2,30년밖에 안 된 집이, 1년도 채 안 된 집이 한순간 감쪽같이 사라지고 있었다. 세워지자마자 사라져버리는 집들도 속출했다. 아기가 태어난 집이 사라지기도 했으며,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멀쩡히 살아남기도 했다. 단 한 개의 균열도 없이 완벽하고 견고하게 지어진 집이 무참히 허물어졌으며, 잎맥처럼 무수한 균열을 품고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집이 끝까지 남아 있기도 했다. 철거는 ‘점진적’으로 진행되기도 했고, ‘급진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채의 집이 사라지기도 했고, 스무 채의 집이 한꺼번에 사라지기도 했다. 나란히 서 있는 집 네 채가 하룻밤에 한 채씩 차례로 사라지기도 했으며, 몇 미터, 몇 킬로미터의 거리를 두고 대각으로 서 있는 두 채의 집이 동시에 사라지기도 했다.

 

   철거는 철거단원들에 의해 자행되었다. 시인이, 혁명가가, 물리학자가, 경건한 종교인이, 화가가, 은행원이, 페인트공이…… 철거단에 가입하고 있었다. 철거단원들은 낮에는 돌아다니지 않았다. 낮 동안에는 교양 있고 인격적이며 평온한 모습으로 일상에 잠복해 있었다. 잿가루 같은 어둠이 내리면 입과 턱을 흰 방독면으로 가리고 거북의 등딱지 같은 신발을 신고서 집결했다. 집결 장소는 지하 주차장이거나 폐쇄된 공장의 공터이거나 들쥐들로 들끓는 교각 밑이었다. 일정 규모의 철거단원 무리가 형성되면, 경종(警鐘)과도 같은 발소리들을 규칙적으로 울리며 거리로 나왔다. 익명의 집에 철거를 선고했다. 철거가 선고된 집에 파란 방음포를 둘러 소음과 분진을 차단했다. 현관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기민하게 전기와 수도와 가스 공급을 차단했다. 문짝들과 창문들과 변기와 세면대를 떼어냈다. 장판과 벽지를 뜯었다. 목 자재와 철 자재를 분리했다. 벽을 허물었다. 철 자재들을 무참히 분질렀다. 트럭이 달려와 집이 해체되며 발생한 폐기물들을 싣고 사라졌다. 철거단원들은 구호를 외치듯 멸실(滅失)을 외쳤다.
   멸실! 멸실! 멸실!
   철거단원들은 한 채의 집이 그 흔적조차 사라질 때까지 기계처럼 움직였다. 간혹 부주의한 철거단원이 무너지는 벽돌 더미에 깔려 척추가 부러지거나, 철 자재에 심장이 꿰뚫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주의한 철거단원은 단원 자격을 상실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자신의 집에 철거를 선고하는 철거단원들도 있었다. 분노에 찬 주동자처럼 철거단원들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온전한 집을 산산이 부수어버렸다.

 

   그녀는 며칠 전 3백여 채가 넘는 집이 하룻밤 만에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구역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구역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중산층의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구역이었다. 그녀는 성당의 늙은 수녀로부터 소문을 전해 들었다. 수녀는 당뇨로 인해 멀어버린 눈을 희멀겋게 뜨고 소문을 전해주었다. 그녀는 소문을 믿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 3백여 채의 집을 허물기 위해 대규모 철거단원 무리가 형성되었다. 무리는 또다시 여러 개의 무리로 나뉘어 철거가 선고된 구역으로 몰려갔다. 구역의 경계에 거대한 방음포를 둘렀다. 구역은 일시에 정전에 들었다. 암흑이 까마귀의 날개처럼 펼쳐져 구역을 덮었다. 철거단원들은 집들을 무차별적으로 허물기 시작했다. 소음과 분진과 비명이 아비규환처럼 넘쳐났다. 날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3백여 채의 집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떼를 지어 강 쪽으로 몰려갔다. 아이들과 노인들, 한쪽 팔이 없거나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떠밀리듯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또다시 밤이 찾아오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사람들이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강에 어선이 띄워졌다. 한때는 멸치를 잡던 어선이었다. 어선은 수십 개의 백열전구를 밝혔다. 멸치를 잡던 어부들이 그물을 던져 사람들을 건져 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철거가 전쟁과 테러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전쟁은 너무도 먼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테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살고 있는 구역에서도 철거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집은 철거되지 않았다. 전날 밤에도, 그 전날 밤에도, 그리고 그 전전날 밤에도……
   그리고 오늘 밤.

 

 

4

 

   “우리는 당신의 집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의 목숨을 희생할 수도 있습니다.”
   손님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목숨이라면……”
   그녀는 잠언을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우리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손님들 중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그녀는 불현듯 공포를 느꼈다. 목숨을 내놓고도 바라는 것이 없다니…… 그것도 내 집을 위해서 목숨을 희생하고도……
   손님들은 여전히 외투를 벗지 않고 있었다.

 

 

5

 

   그녀는 며칠 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철거단원들을 보았다. 저녁 미사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수녀의 죽음이 있었다. 그녀는 철거로부터 살아남은 집들을 무심히 지나쳤다. 집들이 사라지고 남은 휑한 공간들도 무심히 지나쳤다. 철거단원들은 차갑고 둔중한 발소리들을 규칙적으로 울리며 그녀를 뒤쫓았다. 거북의 등딱지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철거단원들이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콘크리트 벽에 쇠공을 박아넣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다급하게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철거단원들은 골목까지 그녀를 뒤따라왔다. 철거단원들은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지만 그 거리가 적어도 열 발자국은 될 거라고 짐작했다. 그녀와 철거단원들은 미로 같은 골목을 오래오래 헤맸다. 혈관에서 혈관이 뻗어나가듯, 골목에서 골목이 끝없이 뻗어나갔다. 골목은 점점 길고 좁아졌다. 그녀는 철사처럼 좁은 골목에 들어와 있었다. 철거단원들은 뱀처럼 길게 한 줄로 서서 골목을 통과했다. 골목을 간신히 빠져나가자 콘크리트 벽이 그녀를 막아 세웠다. 그녀는 콘크리트 벽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다가 불현듯 뒤를 돌아보았다. 철거단원들이 익명의 집에 방음포를 두르고 있었다. 창마다 환하게 불을 밝힌 집이었다. 불이 꺼지고 집은 암흑에 젖어들었다. 사람들이 맨발로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집이 지진에 휩싸인 듯 흔들렸다. 그녀는 집이 서서히, 그러나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골목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며 아들들을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아들들도 철거단원이 되었을지 모른다. 밤마다 입과 턱을 방독면으로 가리고, 거북의 등딱지 같은 신발을 신고 무리를 지어 다니는지도…… 철거가 선고된 집으로 쳐들어가 문짝을 떼어내고 있는지도…… 어느 날 아들들은 철거단원들을 이끌고,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라온 집으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집을 붕괴시켜버릴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들들을 위해 기도했다.

 

 

6

 

   무수한 집들이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한 번도 그녀의 집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집은 홍수에 잠긴 적도, 지진에 휩싸인 적도 없었다. 전기가 끊겼던 적도 없었고, 물 공급이 중단된 적도 없었다.
   “목이 마르군요.”
   손님들 중 누군가 말했다. 그녀는 부엌에서 물병을 가져다 손님들에게 주었다. 손님들은 사이좋게 물을 나누어 마셨다. 물병 속 물이 바닥날 때까지 한 모금씩, 차례대로. 그녀는 빈 물병을 들고 부엌으로 몸을 움직여 갔다. 냄비에 물을 받고 달걀 세 알을 띄웠다. 냄비에서 달걀 삶아지는 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달걀 껍데기를 깠다. 달걀과 소금을 손님들에게 주었다. 손님들은 달걀에 소금을 잔뜩 묻혀 입으로 가져갔다. 달걀을 씹지 않고 삼켰다. 손님들의 식도에 달걀이 막혔다. 손님들은 주먹으로 가슴을 쳐대며 달걀을 토했다.
   “우리는 당신의 집에 먹을 것을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의 집을 철거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온 것입니다.”
   손님들이 합창을 하듯 말했다.
   그녀는 한 번도 그녀의 집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집이 사라져버리기를 바랐던 적도 없었다. 그러나 집이 사라진다고 해도……
   “오늘 밤 내 집에 철거단원들이 들이닥친다면 나는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녀는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로 손님들에게 말했다.
   “당신은 무엇인가 잘못 이해하고 있군요.”
   손님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당신의 집은 결단코 철거되어서는 안 됩니다.”
   손님들 중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결단코.”
   손님들 중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내 집에 철거가 선고된다고 해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집이 철거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신의 집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을, 우리는 선택했습니다. 당신의 집을 말입니다.”
   손님들 중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선택이라고 했습니까?”
   “그래요, 선택! 선택은 선택인 것입니다.”
   손님들이 합창을 하듯 말했다.

 


7

 

   “나는…… 잠을 자야겠어요…… 나는……”
   “당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당신의 집을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손님들을 거실에 남겨둔 채 침실로 갔다. 침대 위로 올라가 천장을 바라보고 반듯하게 누웠다.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쥐었다. 그녀는 예순두 살이었다. 며칠 전에 죽은 수녀와 같은 나이였다. 수녀는 그녀의 친자매이기도 했다. 수녀는 1년에 한 번씩 그녀의 집을 찾아와 성수를 곳곳에 뿌려주고 돌아갔다. 그녀의 남편이 죽고 그녀의 아들들이 떠난 뒤에도 수녀는 1년에 한 번은 소중한 성수를 물병에 담아서 그녀의 집을 찾아와주었다. 자매가 결핵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그녀는 ‘집’을 돌보고 ‘집’을 위해 기도했다. 잠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손님들이 있는 거실로 나갔다. 손님들이 앉아 있는 소파 앞을 시계추처럼 일정한 보폭으로 걸어다녔다. 안락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녀는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 흔들림을 멈추고 ‘점검’하듯 집을 둘러보았다. 정결하고 검소한 집이었다.
   그녀는 지난 35년을 ‘이’ 집에서 살았다. 지금은 그녀만이 집에 남았다. 남편은 죽어서 집을 떠났다. 두 아들도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집을 떠났다. 집은 그녀에게 격리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완전하게 보호해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35년 동안을 매일같이 집을 위해 그녀의 육체와 정신과 시간을 소모해왔다. 남편과 두 아들이 함께 사는 동안에는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육체와 정신과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집은 오래전에 그녀의 ‘모든 것’이 되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집을 떠나기 전부터. 집을 잃는 것은 그녀의‘전부’를 잃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조용히, 뒤꿈치를 들어 발소리를 죽이며 방마다 들어갔다 나왔다. 방마다 적어도 10분 이상을 조용히 머물렀다. 방은 모두 세 개였다.

 

 

8

 

   집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지진의 중심에 있는 듯 집이 크게 한 번 흔들리고, 문짝과 창문들이 떼어내지고, 욕조와 세면대가 들어내지고, 벽들이 허물어지고, 철 자재들이 잘리고…… 35년, 35시간, 35분, 35초, 3초, 1초.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은 순간, 찰나.
   찰나의 사라짐.
   오늘 밤 집이 철거단원들의 기습으로부터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집은 백 년조차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2,30년 뒤에는 무참히 허물어질 것이다. 오늘 밤 무사히, 극적으로, 손님들의 목숨을 희생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녀는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집에 있는 대부분의 순간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남편과 아들들이 떠난 뒤, 집은 그녀에게 침묵을 가르쳐주었다.
   “벽지를 바꾸어야겠어. 격자무늬가 좀더 촘촘한 것으로……”
   그녀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불현듯 손님들에 대한 경계심으로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올랐다. 손님들은 무수한 양옥집들 속에서 그녀의 집을 발견하고, 선택했다. 선택은 우연이었다. 손님들은 현관문을 통해, 정식으로,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침입은 아니었다. 침입은 아니었지만, 손님들은 예고나 경고도 없이 들이닥쳤다. 그 점에서는 철거단원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녀의 아들들…… 아들들조차도 예고 없이 집에 들이닥치지 않았다. 그녀가 새벽마다 신의 은총과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아들들조차도.
  그리고 손님들은 지금 그녀의 집 거실에 머물고 있었다.
   왜 하필……
   그녀는 서서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붉은 차를 끓여 마셨다. 그녀는 손님들에게 붉은 차를 나누어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집이 한순간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집이 사라질 수 있다니…… 내가 죽기 전에 내 남편과 두 아들이 살았던 집이……
   그녀는 당장이라도 손님들을 집 밖으로 내쫓을 수 있었다. 그 일이 여전히 쉽고 간단하게 보였지만, 그녀는 굳이 손님들을 내쫓지 않았다.

 

 

9

 

   손님들은 ‘집단’이었지만 ‘개별’로 보이기도 했다. 손님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암묵의 의견을 나눌 때 특히 그랬다. 그녀는 손님들이 서로를 지극히 낯설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손님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탐색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손님들이 그녀의 집을 찾아오기 바로 몇 시간 전에 접촉했으며, 바로 몇 시간 전에 외투를 나누어 입은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날이 밝아 그녀의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손님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서로를 완벽하게 잊어버릴 것이다. 길거리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차갑게 지나칠 것이다.

 

   손님들과 그녀.

   소통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손님들은 그녀와 소통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손님들은 여전히 손님들일 뿐이었다.
   그녀의 집을 철거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찾아왔다고 해도. 다만, 손님일 뿐.

 

   손님들은 철거단원들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10

 

   발소리들……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안개의 이동처럼 희미했지만 그것은 ‘무리’를 형성해 이동하고 있는 발소리들이 분명했다. 발소리들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으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소리들은 일사불란했다. 철거단원들의 발소리들이었다. 입과 턱을 흰 방독면으로 가리고, 거북의 등딱지 같은 신발을 신은 철거단원들.

 

   철거단원들이 ‘그녀의 집’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격자무늬 위의 괘종시계가 둔중한 소리를 울리며 자정을 알렸다. 손님들이 동시에 벼락을 맞은 듯 몸을 일으켰다. 원칙과 질서로 짜인 격자무늬들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커다랗게 확대된 눈동자를 굴리며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발소리들은 그녀의 집을 미세하게 흔들어놓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그녀의 집을 무차별적으로 뒤덮어버릴 듯. 극에 달하던 발소리들이 한순간 침묵 속으로 잦아들었다.
침묵.
   손님들은 결의에 찬 날카로운 눈빛들을 교환했다. 현관문 쪽으로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움직여 갔다. 손님들은 현관문과 한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 멈춰 섰다. 손님들은 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손님들은 외투를 벗지는 않았다. 현관문을 향해 다리들을 벌렸다. 서로의 손을 움켜쥐었다. 철거단원들이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오려면 손님들의 무릎과 가랑이와 갈비뼈 하나하나와 심장과 턱과 광대뼈와 이마를 무참히 짓밟아야 한다……!
   침묵.
   발소리들이 또다시 들려왔다. 그녀는 발소리들이 현관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쳐들어오기를, 손님들의 심장을 짓밟아버리기를 바랐지만, 뜻밖에도 멀어지고 있었다. 기적처럼, 그녀의 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손님들은 여전히 바닥에 몸을 누인 채 탄성들을 내질렀다. 발소리들이 완전히 멀어진 뒤에야 손님들이 서로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갔어요! 그들이……!”
   손님들이 자긍심에 찬 목소리로 합창을 하듯 말했다.
   “당신의 집은 오늘 밤 안전할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오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손님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들이 다시 온다면 당신의 집은……”
   손님들 중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온다고 해도 우리는 당신의 집을 지켜낼 것입니다.”
   손님들 중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들의 목숨이 사라지기 전에 이 집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숨이 사라진 뒤에는 이 집도 어쩌면……”
   손님들은 동시에 합창을 하듯 말했다. 손님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들은 소파로 움직여 갔다. 소파에 나란히 어깨를 붙이고 앉았다.

 

 

11

 

   그녀는 소파 쪽으로 몸을 움직여 갔다. 손님은 세 명이었지만 여섯 명으로 보이기도 했고 아홉 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단 한 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세 명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손님들은 세 명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쩌면.
   소파는 4인용이었다. 한 사람이 앉을 만큼의 자리가 남아 있었다. 손님들은 세 명이 분명했다. 그녀는 손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자신도 손님들 중 한 명일지 모르며, 철거로부터 이 집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는 각서를 비밀리에 작성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롱에서 두터운 외투를 꺼내 입어야 하지 않을까, 손님들처럼.

 

 

12

 

   “날이 밝아오는군요.”
   손님들 중 누군가 말했다.
   그녀는 거실 창 쪽으로 몸을 움직여 갔다. 안개꽃 같은 새벽빛이 거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는, 그녀의 집 거실 창을 전면으로 가로막고 서 있던, 건넛집의 담벼락과 지붕이 새벽빛에 지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철거…… 그녀는 새벽빛 속에서 마른 입술을 벌려 중얼거렸다.
   “당신의 집은 온전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손님들 중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나 또다시 밤이 찾아올 것이고 철거단원들이 또다시 당신의 집을 주목할지 모릅니다.”
   손님들 중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13

 

   날이 환하게 밝아왔지만 손님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손님들은 목각 인형처럼 목을 꺾으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지난 밤새 손님들은 한숨도 자지 않았다. 손님들은 외투를 벗지 않았다. 손님들이 눈동자들을 흐리게 뜨고 어깨들을 흐느적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손님들은 지난밤과는 다르게 무기력하고 나태하며 무방비하게 보였다. 입들은 고장 난 문짝처럼 벙긋 벌어져 있었다. 흉물스럽게 드러난 이빨 사이로 누런 침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지난밤과는 전혀 다른 손님들의 모습에 공포를 느꼈다. 거의 20년 만에 맛보는 공포였다.
   “침대로 가서 누우세요.”
   그녀는 공포를 간신히 참으며 손님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에게 내 침대를 내어주겠어요. 늙은 여자의 침대지만 당신들이 몸을 누이기에 충분히 넓고 아늑한 침대랍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손님들이 동시에 침을 훔치며 느리게 말했다.
   “알고 있어요. 당신들이 목숨까지 내놓고 내 집을 철거로부터 지켜내려 하지만, 내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손님들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님들은 가난과 질병에 찌든 순례자 행렬처럼 차례를 지어 침실로 걸어갔다. 차례로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손님들은 외투를 벗지 않았다. 그녀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어 손님들의 몸을 덮어주었다. 오랫동안 장롱에 넣어져 있던 이불에서는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안락의자를 가져다놓고 앉았다. 손님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검은 책을 집어들었다. 그녀는 검은 책을 무릎에 펼쳐놓고 경건하게 읽어 내려갔다.

 

 

14

 

   그녀는 여전히, 손님들을 집에서 내쫓는 것이 새장 속의 죽은 새를 버리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처럼 보였다.
   그토록 간단한 일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녀는 굳이 손님들을 내쫓지 않기로 했다.

 

 

15

 

   철거단원들은 그녀의 집 현관문을 부숴버릴 수도 있었다. 현관문 밑에 드러누워 있는 손님들의 발목과 무릎과 가랑이와 갈비뼈와 심장과 목과 광대뼈와 이마를 밟고 집 안 깊숙이 쳐들어올 수도 있었다. 손님들의 발목과 무릎과 갈비뼈와 광대뼈와 이마가 으스러지고 심장이 터졌을 것이다. 철거단원의 단단한, 익명의 발이 손님들 중 누군가의 가랑이에 치명적으로 박혔을 수도 있었다. 손님들의 목숨은 그녀의 집을 위해 기꺼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손님들은 세 명이었지만 여섯 명으로 보이기도 했고 아홉 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손님들은 단 한 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에 이 집도…… 나만 살아남는다, 나만……’
   그녀는 그녀의 집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뒤, 사라진 터 위에서 철거단원들이 멸실을 외쳐대는 환영을 보았다. 철거단원들은 발을 도끼처럼 구르며 멸실, 멸실, 멸실을 외쳤다.

 

   그녀는 검은 책을 덮었다.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님들의 이마를 한 번씩 짚어주었다. 이마들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이 집이 어둠에 잠길 무렵에야 깨어나겠지……
   그녀는 조용히 침실에서 나와 현관문 쪽으로 몸을 움직여 갔다. 현관문 잠금 고리가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님들을 집 안으로 들인 뒤 잠금 고리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손님들의 신발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굽 낮은 외출용 신발만 현관문을 향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찬란한 빛이 그녀에게, 그녀의 집에 축복처럼 내리쬐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현관문을 닫았다.
   ‘축복을 받은 집이야.’
   그녀는 가차없이 집을 등지고 걸었다.

 

 

16

 

   지난밤, 그녀의 집은 철거되지 않았다. 손님들이 목숨을 내걸고 그녀의 집을 지켜주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의 집은 철거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을 손님들을 생각했다. 그녀는 사라진 집들과 사라지지 않은 집들을 지나 강 쪽으로 걸어갔다. 강이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그녀는 안개 속으로 다급하게 사라지는 철거단원들의 발소리를 들었다.
   차가운 물이 발목에 휘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 어떤 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것도.

 

   그녀의 집은 다만, 손님들의 것이 되었다.

–  『침대』(문학과지성사, 2007)에 수록

 

 

   추천하며


   이 도시에서는 오늘도 많은 집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집이 사라지면 그 집을 지키던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철거는 하루아침에 누군가의 집을 빼앗아버린다는 점에서 전쟁이나 테러 같은 비현실적인 사태들과 다를 바 없는 폭력일 것이다. 김숨의 「손님들」에서 철거는 마치 “전쟁과 테러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단 한 채의 집도 남지 않을 때까지 철거가 중단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예정된 도시가 있다. 시민들 모두가 철거단원이 되어 무작위로 집을 부수고 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떼를 지어 강 쪽으로 몰려가고 강물 속으로 떠밀리듯 뛰어든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어쩌면 모두가 공평한 불운에 처해 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35년을 한 집에서 살아온 ‘그녀’의 집에 철거단원이 아닌 ‘손님들’이 찾아온다. 세 명인 듯도 단 한 명인 듯도 한 그 손님들은 “우리는 당신의 집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의 목숨을 희생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손님들은 대체 왜 목숨을 걸고 ‘그녀’의 집을 지키려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당신의 집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손님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누군가의 집이 사라지는 것도 누군가의 집이 지켜지는 것도 모두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김숨은 말하려는 것일까. 그렇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손님들에게 집을 내어주고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의 ‘선택’은 유일하게 자발적인 것이라고 절망적으로 말해 보아야 할까. 김숨 특유의 미니멀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손님들」을 읽다 보면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폭력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선택 불가능의 폭력 말이다.

 

(소설가_편혜영/문학평론가_노대원, 양윤의, 조연정)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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