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지 마시오

   십년감수(十年感秀)_시

 

 

  손대지 마시오

 

   황인숙

 

 

 


   욕조 속으로
   졸졸졸 흘러 떨어지는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기다리지 않으면서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가고
   물이 가득 채워진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의자는
   깔고 앉아 있다
   제 그림자를.

 

– 『리스본行 야간열차』(문학과지성사, 2007)에 수록

 

 

   추천하며

 

   기다리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은 그 자체로 어떤 기다림이다.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혹은 자신의 기다림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무엇도 기다릴 수 없는 까닭이다. 시인은 “졸졸졸 흘러 떨어지는 물줄기”와 그것을 “바라보는 고양이”를 바라본다. 흐르는 물이 어떤 기다림의 시간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고양이는 하염없는 것에 대한 의심 없이, 기다리겠다는 의지 없이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의 의태(意態)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짧은 시가 그려내는 것은 기다림이라는 추상의 구체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일 때는 어떠한가. 기다리는 일에는 응당 그 기다림의 대상인 목적어가 따른다. 이 시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그 목적어가 특정한 명사 혹은 대명사로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또 다른 목적을 암시하는 동사로 쓰인다는 데 있다. 기다리는 일에도, 기다리는 일을 있게 하는 지나가는 것에도 아무런 목적이 없다. 허망하게 제 그림자를 깔고 앉아 있을 뿐인 의자처럼, 시에는 여러 겹의 목적이 공백의 자리로만 놓여 있을 뿐이다.
   기다리는 일, 그것에 본질이 있다면 무목적적인 목적을 끊임없이 자가생산하는 방식이 아닐까. 목적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그곳을 괄호로 비워 두는 일, 그 자리로 스며드는 것들을 하염없이 지워내는 일이 곧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말한다. ‘지나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모든 것들이 저 기다림의 자리에 고였다 다시 흘러갈 것이고, 그렇게 지나가 버리는 것들로 인해 이 기다림이 온전히 기다리는 일이 될 수 있다고. 가장 기다리는 마음은 잡아채지 않는 마음이다.

 

(문학평론가_고봉준, 김나영, 김영희, 양경언)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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