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도 백수 일지(제5회)

   꿈꾸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 쿠바와 남미의 나날들(제5회)

 

베다도 백수 일지

 

김성중

 

 

 

 

   2. 쿠바 후손회와 한인회

 

   아바나 교민 예닐곱 명이 모여 비노(와인)를 마신다. 코트라 관장으로 재직하다가 새우 사업에 투신한 사장님이 무슨 내기인가에 져서 한턱내는 자리다. 곧 한국으로 돌아갈 유부장님이 중요한 화두를 꺼냈다.
   사실 아바나의 한국 사회에는 폭탄이 떨어진 상태다. 그간 한인회를 지원하던 암펠로스 그룹이 하루아침에 퇴거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십 년 넘게 쿠바에서 자리를 잡은 그룹이 종이 한 장으로 철수하는 사연이 무엇인지는 작가 나부랭이인 나에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던 차에 한국 정부에서 드디어 쿠바에 지원금을 보내기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도착한 것이다. 쿠바 한인들의 역사는 멕시코 한인들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일제 식민 치하에 에네켄 노동자로 아메리카에 첫발을 디딘 멕시코 한인들 이야기는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그중 일부가 쿠바로 건너가 다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호황기 끝자락에 들어온 까닭에 이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성공을 거둔 이도 적었는데, 놀랍게도 쿠바의 한인들은 피땀 흘려 모은 돈 일부를 김구의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보냈다.
   그러나 6·25가 발발하고 고국이 분단되자 쿠바 후손들은 남한에도 북한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기에 고국은 너무나 멀고 이방에서의 삶은 고되었을 것이다. 4세대, 5세대로 내려온 지금 쿠바의 한인 후손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실제로 한인 후손들을 만나 보면 피만 섞였을 뿐, 외모도 가치관도 쿠바노에 가깝다.
   그렇다고 100% 쿠바노라고만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는 성애리(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보자. 아이돌 뺨치게 예쁜 이 아가씨는 할머니에게서 한국말을 배운 지 십여 년 되었고, 장래 희망은 한국에 가서 사는 것이다. 남자친구도 한국 사람인데 퇴거 명령을 받은 암펠로스 그룹에 다니는 관계로 하루아침에 두 연인은 고민에 빠져 있다. 아무튼 이래저래 심란한 과외시간인데…… 각설하고.
   이곳 한인사회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나야 3월이면 떠날 사람인지라 이런 사정을 듣기만 했다. 가장 큰 이슈는 공석이 된 대표 자리를 후손회가 맡을 것이냐, 한인회가 맡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100% 한국인이지만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소수인 데다 한국으로 떠날 사람이 많은 한인회가 대표성을 띠기엔 무리가 있다. 한편 쿠바 후손회의 숫자는 천 명쯤 되지만 그간 활동이 중단되다시피 한 데다가 갑자기 거금(우리 기준에서는 크지 않지만 쿠바인 입장에서 보면 큰돈)이 떨어지면 집행에 잡음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나로서는 쿠바 후손회에게 대표직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흥미로웠다. 물론 반론도 있다. 그들을 한국인으로 볼 수 있을까? 생각과 외모와 문화는 거의 쿠바인과 같은데?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며 민족이라는 단어 자체에 고개를 외로 꼬던 나에게 이것은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쿠바인이기도 하고, 한국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표는 그들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후손의 입장이라면 고국에서 온 어떤 이가 ‘왜 한국 사람 같지 않아?’라고 하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렇다고 피와 민족이 묽어지기까지 이들이 일궈 온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명절에 모여서 부침개를 해먹고, 말을 다 잊어버린 이후로도 오랫동안 김치를 담가먹던 사람들이 아닌가. 언어는 금세 잊힌 데 반해 음식의 전통은 꽤 오래간 것을 보면 새삼 인간이 무엇으로 구성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지금은 그마저 희미해졌다고 하지만, 어쨌건 이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소수의 교민들이 아니라 그들이니까.
   와인이 더해지면서 대표는 후손회에 돌려주되, 예산 집행은 코트라에서 감사를 하며, 장차 교민회와 후손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틀거리를 마련한다는 일차적 결론이 도출되었다. 나로서는 술 한 잔 얻어먹으러 간 자리에서 뜻밖에 흥미로운 대화를 듣게 되었다.

 

 

   3. 재즈카페의 이대팔 가르마

 

   또 다른 친구가 생겼다. 띠동갑인 캐나디언 대니얼 아저씨는 카페테리아에서 혼자 밥 먹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 왔고, 가뜩이나 허접한 영어의 서랍에 스페인어가 끼어드는 바람에 엉망진창인 내 말을 잘 참고(?) 들어주었다. 몬트리올 출신의 영어-불어 번역가인 대니얼은 수십 개국을 돌아다닌 여행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빨리 친해진 것은 발자국을 남긴 무수한 지명들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길을 걸어가면서 아옌데, 볼리바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가 번졌다.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는데 쿠바라서 그런가, 아니면 우연인가, 이곳에서 내가 만난 여행자들은 한국 사람이든 외국인이든 죄다 좌파였다. 전날 오비스포 거리를 함께 걸어 다닌 한국 대학생은 요새 보기 드문 빨갱이 청년이었고, 대니얼 또한 적잖이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쿠바에서 암 투병 중인 차베스에 대해 언급하면서 ‘쿠바가 베네수엘라의 원유에 많이 의존한다는데 만약에……’라고 말하자, 차베스가 죽더라도 포스트 차베스가 대행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는 식으로 국제 정세도 아는 것이 많았다.
   이 아저씨와 말이 통한다고 생각한 것은 두 번째 만남에서였다. 그날 아프가니스탄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난 터라 줄거리를 얘기해 줬더니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는 시아파니 수니파니 하는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세를 비롯한 여러 세력의 ‘점령’ 문제라고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것이다. 내친김에 ‘월스트리트 점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티브이쇼로 끝나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지젝과 파졸리니와 우디 앨런의 최근 필름들, 한때 아바나를 호령한 알 카포네와 마피아들, 꼭대기에 눈이 쌓인 모로코의 야자수와 중국의 거북이 수프, 파시스트 대통령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자 나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학생보다 못한 영어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새삼 깨달은 사실인데, 흥미로운 대화에는 언어의 장벽보다 그 사람의 관심과 가치관의 방향성이 더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학생보다 조금만 더 낫게 말할 수만 있어도 몇 배로 더 흥미진진해졌겠지만…….
   베다도에서 유명한 재즈카페에도 함께 가보았다. 약간의 입장료를 내면 그 한도 내에서 음식과 술을 주문할 수 있는, 전면에 바다가 보이는 멋진 곳이다. 쿠바 뮤지션들의 실력이야 레스토랑을 도는 연주자들의 공연만 봐도 대단하지만, 이곳에서 본 공연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처음엔 스탠더드 재즈로, 그 다음엔 솔로 타임으로, 그리고 전통음악을 섞어 적절히 레퍼토리를 구성했는데 난생처음 보는 타악기가 줄줄이 등장해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것은 봉고를 치는 아시아맨이었다. 이대팔 가르마에 영락없이 한국 쌀집 아저씨같이 생긴 분이 흑인과 백인과 물라토로 구성된 밴드에서 신나게 봉고를 두드리고 있었다. ‘한국 사람 같아 보여’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내 귀에는 영락없이 장구소리로 들렸다. 아니, 정말이지 봉고는 장구랑 비슷한 소리가 났다. 덩더더덕 쿵딱쿵~ 뭐 이런 식으로.
   모히또가 조금 더 들어가자 장구소리가 우리말로 번역되기에 이르렀다. ‘들쭉날쭉’ ‘들쭉날쭉’ ‘울그락푸르락’ ‘울그락푸르락’ 이렇게 선명히 들리는 것이다!
   곧 산타클라라로 떠날 대니얼 아저씨와 바이바이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장구를 치다가 쿠바에 가서 봉고를 치게 되는 어떤 인물에 대해 메모했다. 이게 소설이 될 수 있을까? 또 다른 어떤 길 위에서 주인공이 사건을 만나면, 마침내 내 종이로 걸어오지 않겠는가. 정말이지 오늘 술값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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