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제1회)

 

서울

(제1회)

손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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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딘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창가로 다가가 조심스레 블라인드 틈에 눈을 갖다 댔다. 거리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산발적인 총성이 울리더니 이윽고 그마저도 뚝 그쳤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꺼내어 쥐었던 나이프의 칼날을 접어 다시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잠에서 깨어난 동생에게 다가간 소년은 손을 뻗어 동생의 이마를 짚었다.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아니야. 아직도 열이 있어. 그대로 누워.”
동생의 머리맡에 앉은 소년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캄캄한 밤중이었다. 무겁고 축축한 공기가 도시를 채웠다. 소년은 어둠에 눈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사물을 구별할 수 있게 되기까지 점점 오랜 시간이 필요해졌다. 소년은 불빛이 새나가지 못하도록 바람막이를 둘러 세운 뒤 가스버너에 불을 붙여 죽을 끓였다. 소년은 동생의 상반신을 일으켜 세운 뒤 자신의 어깨로 동생의 등을 받쳐 주었다.
“부드러운 죽이야.”
동생은 아무 말 없이 소년이 숟가락을 입에 넣어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숟가락과 동생의 이빨이 자꾸만 부딪혔다.
“형은 먹었어?”
“난 죽을 끓이면서 먹었어.”
소년은 동생의 등을 몇 번 두드려 주었다. 동생이 다시 눕자 소년은 창가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다. 하늘에는 희미한 별들이 듬성듬성 박혔다. 소년이 동생에게 물었다.
“하늘이 보여?”
“보여.”
거리는 삭막했지만 고요하지는 않았다. 도시 전체가 잠들었으나 그것은 악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과 비슷했다. 꿈에서 지른 비명을 꿈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 골목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고성능 손전등인 듯했다. 밤은 낮보다 안전했지만 손전등을 켜고 다닐 만큼은 아니었다. 소년은 하늘이 잘 올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곳에서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타고 남은 숯덩이 같았다. 소년은 배낭의 주머니에서 꺼낸 아스피린 한 알을 잘 으깨어 물에 타 동생에게 먹여 주었다. 동생이 기침을 하는 동안 소년은 손바닥으로 동생의 입을 가렸다. 소년은 침이 튄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아기가 울어.”
“고양이야.”
“아기가 맞아.”
“더 이상 아기는 없어.”


시간은 파이프를 통과하는 원유처럼 흘러갔다. 깊은 새벽 거리를 질주하는 개떼들의 소리를 들었다. 성대 없는 개들의 음침한 행렬이 사라질 때까지 소년은 눈을 떼지 않았다. 동이 트기 직전 바람이 날카롭게 불었다. 오전 무렵 사위는 다시 어두워졌고 어디선가 몰려온 적운이 서울 하늘에 위태롭게 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잿빛 도시가 산성비에 젖어 갔다. 도랑을 이룬 빗물이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며 흘러갔다. 빗물은 폭격으로 생긴 구덩이들로 모여들었다. 소이탄(燒夷彈)에 검게 타버린 사체들이 둥둥 떠다녔다. 하루 종일 내린 비는 밤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비는 종일 내렸다. 소년의 동생은 침낭 속에 들어갔다.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을 끓이거나 아스피린을 으깨는 것뿐이었다. 이틀 동안 내린 비가 그치자 도시는 다시 부서지기 시작했다. 해가 뜨고 난 지 얼마 안 되어 악취가 풍겨 왔다. 가까운 곳에서 건물이 붕괴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으로 기운 빌딩의 이마에는 한글과 영문으로 쓰인 한스킨이라는 글자가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건물을 전부 감싼 벌집모양 외벽은 누군가 손가락으로 건드린 녹슨 방충망처럼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소년은 동생의 이마에 손바닥을 댔다.
“열이 많이 내렸어. 내일쯤이면 떠날 수 있을 거야.”
“갈 수 없어.”
“가야 해. 어젯밤에 누군가 이 빌딩 안에 들어왔어.”
“나도 알아.”
“그자가 누구든 우리를 발견하면 우리를 죽일 거야.”
“우리가 아니라 나겠지.”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 거야.”


소년은 한밤중에 조심스레 빌딩을 돌아다니는 발소리를 들었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나직하게 주고받는 목소리도 들렸다. 소년은 동생의 손을 붙잡았다. 소년의 다른 손에는 나이프가 들려 있었다. 발소리는 방문 앞까지 다가왔다. 둥근 손잡이가 끽 소리를 냈다. 헐렁해진 손잡이 캡이 달그락거렸다. 이윽고 발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소년은 깊은 숨을 토해 냈다. 밤새 빌딩이 삐걱댔다. 내부의 철골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주택가에서 시작된 비명과 신음이 볼륨을 줄인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나지막하게 빌딩을 채웠다. 소년은 눅눅해진 비스킷을 동생과 나눠먹었다. 다음날 해질 무렵 소년은 죽을 끓여 동생을 먹인 뒤 배낭을 꾸렸다. 소년은 배낭 깊숙이 손을 넣었다. 스미스 웨슨 리볼버가 만져졌다. 소년은 동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권총을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소년은 동생의 머리에 턱 가리개가 없는 헬멧을 씌워줬다. 동생은 직접 턱 끈을 조인 뒤 윈드쉴드를 내려 얼굴을 가렸다. 소년은 동생 옆에 앉아 어둠이 두터워지길 기다렸다.
“어디로 갈 거야?”
“대로를 따라 가다가 고속도로를 만나면 남쪽으로 갈 거야.”
“꼭 가야 해?”
“꼭 가야 해.”
소년은 맹견퇴치기의 건전지를 교체한 뒤 손에 쥐었다. 소년은 자신의 몸집만 한 배낭을 멨다. 배낭이 여전히 무거워서 다행이었다. 한동안 버틸 수 있을 듯했다. 소년의 것보다 훨씬 작은 배낭을 멘 동생은 소년의 배낭 뒤쪽으로 흘러내린 끈을 붙잡았다. 그들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으나 빌딩 안으로 들이친 빗물이 고인 곳을 지날 때마다 발밑에서 철벅철벅 소리가 났다. 아래층은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소년은 발에 걸리는 것이 무엇인지 신경 쓰지 않고 조심조심 앞으로 나갔다. 그들은 현관에서 잠시 헤매다 엘리베이터가 늘어선 좁은 복도를 지나 유리창이 없는 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형, 너무 캄캄해.”
“나도 그래.”
소년은 물이 출렁이는 곳을 피해 동생을 이끌었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일 것이다. 발을 잘못 디디면 깊은 심연으로 끌려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 악취가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소년은 지하철 출입구가 있는 사거리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장자리가 말려든 이정표에는 교보타워 사거리라고 쓰여 있었다. 도로 양쪽으로 무너진 빌딩들이 드러났다.

   그날 밤 소년은 반포IC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낮이면 무너진 방음벽이 지붕을 이룬 그늘에서 잠을 잤다. 밤이 되면 뒤엉킨 차들과 중앙분리대였던 콘크리트 덩어리 사이를 조심스레 빠져나갔다. 대부분 폭격으로 부서지고 불타버린 터라 뼈대가 드러난 앙상한 차들이었다. 밤새 도로 양쪽의 아파트 단지에서 소름끼치는 소리들이 울려 퍼지다가 날이 새면 그쳤다. 간혹 멀쩡한 차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그 안에는 이미 시체거나 혹은 시체나 다름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굶주린 개들이 뜯어먹다 남겨둔 흑인의 사체를 넘어갈 때 승용차 안에서 미라처럼 말라 가는 다른 흑인을 보았다. 얼굴만으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튼튼한 이빨과 거뭇거뭇한 수염으로 보아 스무 살 근처일 듯했다. 부부였거나 연인이었거나 친구였거나 혹은 폐허가 된 서울에서 우연히 만나 동행이 되었거나 그 둘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살아남은 자의 눈빛은 세상 전부를 잃은 자의 눈빛이었다. 소년은 흑인의 발치에서 주운 스패너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흑인의 손에서 스르르 미끄러진 스패너는 다시 흑인의 발치로 떨어졌다. 몇 번을 되풀이했으나 똑같았다.
어느 날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쪽 하늘에서 나타난 헬리콥터는 서쪽 하늘로 사라졌다.
“아직도 헬리콥터가 있어.”
“소용없어. 곧 추락할 거야.”
다시 설핏 잠이 들었을 무렵 소년은 총소리와 함께 폭발음을 들었다. 소년은 부들부들 떠는 동생을 껴안았다. 동생은 소년을 밀어내지는 않았으나 소년의 품으로 파고들지도 않았다. 동생에게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지금까지 소년이 알고 있던 냄새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낯선 냄새이기도 했다. 황사가 불어오기도 했지만 하늘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푸르렀고 구름이 끼지 않은 밤이면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별이 떴다. 소년은 한 무리의 개들이 다가오는 걸 보았다. 소년은 엎드린 채로 맨 앞에 선 개와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개는 입 꼬리를 들어 올려 잇몸과 송곳니를 드러냈다. 소리 없이 으르렁거리는 개를 향해 맹견퇴치기를 겨누었다. 맨 앞에 선 개는 한참 동안 으르렁거리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더니 무너진 방음벽 사이를 통과해 아파트 단지 쪽으로 사라졌다. 나머지 개들도 그 개를 따라 사라졌으나 털빛이 누렇고 몸집이 커다란 개 한 마리는 여전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소년을 주시했다. 그날 밤 개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소년의 뒤를 따랐다.
“형, 저 개가 계속 우리를 따라와.”
“내버려 둬. 가까이 오면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폭격으로 끊어지며 비스듬히 곤두박질한 다리를 둘러가야 했다. 서초IC를 지나자 어디선가 알람이 울렸다. 먼동이 트고 있었다. 소년은 겹겹이 쌓인 차들 가운데 맨 아래쪽의 승용차에 들어갔다. 소년은 동생의 헬멧을 벗겨 준 뒤 딱딱한 빵과 함께 수통을 건넸다. 소년과 동생은 수통의 물을 번갈아가며 마셨다. 저 멀리 검게 타버린 승용차의 보닛 위에 올라앉은 개가 보였다. 동쪽에 떠오른 태양에서 날아온 빛이 개의 몸에 부딪히며 산산이 부서졌다.

   소년은 동생을 뒷좌석에 눕게 한 뒤 운전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형…… 신이 있을까?”
“없어.”
“그래도 있다면?”
“없어.”
“만약에 말이야. 정말로 신이 있다면.”
“없어.”
“혹시라도 있다면 한번쯤 보고 싶어.”
“넌 볼 수 없을 거야. 내가 죽여 버릴 테니까.”

   폐허가 된 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았건만 폐허 이전의 서울이 어떠했는지를 떠올리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소년은 폐허가 된 서울에 점점 익숙해졌고 때로는 폐허가 폐허 이전보다 장엄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지난겨울은 여느 해보다 추웠으나 어쩌면 이제 세상이 그렇게 바뀐 것인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왜 이런 일이 겨울에 벌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도래할지도 알 수 없었다. 소년은 그런 걸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소년이 아는 건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폭격기들이 남쪽에서 올라오지 않았을 때 소년은 남쪽마저 시간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소년은 눈으로 직접 목격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믿지 않을 생각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것들과 눈으로 보지 않아도 믿어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도 않았다. 소년에게는 동생이 있었고 목숨이 있는 한 살아야 했고 살아 있는 동안 동생을 돌봐야 했다. 폐허가 된 뒤의 서울에는 전보다 붉은 태양이 떴으나 봄이 가까워지자 태양은 이전의 빛으로 되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무너진 건물 위로 먼지가 내려앉으면 무너지기 전보다 고요하게 건물의 잔해가 드러나듯이 폐허가 된 서울도 봄이 오는 것과 더불어 세수라도 하고 나선 것처럼 한층 맑아졌다. 그러나 서울은 이전의 서울이 아니었으며 앞으로 무엇이 될지도 알 수 없었다. 서울은 하나의 거대한 중음신이었다. 소년은 말수가 적어졌고 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둡고 차가운 지하실에서 봄이 오기를 기다렸던 지난겨울이 오래전의 일처럼 아득했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서울 도심을 헤쳐 나온 지난 한 달마저 머나먼 과거의 일로 여겨졌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 가야 할 길도 지나온 길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지난 한 달은 무한히 반복될 미래의 편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바람이 불고 해가 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음과 비명이 밤마다 새로 태어났다. 소년은 밤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공포가 무언지 알 수 있었다. 그 소리는 공포를 일깨워 줬고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라는 깨달음으로 이끌어 줬다. 날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이 잠들기를 두려워하듯이 소년은 잠에서 깨어나 악몽 같은 현실 속으로 들어가기를 두려워했다.

   어두워지는 하늘에 금을 그으며 철새들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소년은 철새 무리가 작은 점의 집합이 되었다가 완벽하게 어둠 속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게 되자 배낭을 멨다. 소년은 헬멧을 쓰지 않으려는 동생의 머리에 직접 헬멧을 씌워 주고 턱 끈을 조여 주었다. 개가 형제를 따랐다. 소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점점 개들이 이상해져. 맹견퇴치기도 쓸모가 없어지나 봐. 맹견이 아닌가 보지.
“그 자리에 멈춰라. 머리에 구멍이 나고 싶지 않다면. ……사람이냐?”
“잘 모르겠어요.”
“사람이 맞구나. 네 뒤에 있는 건 누구냐?”
“동생이에요.”
“왜 헬멧을 쓰고 다니지?”
“아저씨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요.”
“난 아저씨가 아니다.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죽이지 않을 거면 지나가게 해주세요.”
노인은 총신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말했어요.”
“죽여 본 것처럼 말하는구나.”
“필요하다면 그럴 생각이에요.”
“괜찮다면 나와 함께 있어도 좋다.”
“우린 먹을 게 있어요.”
“나도 있단다.”
“그래서 우릴 죽이지 않는 건가요?”
“아니, 어차피 죽을 테니까.”
“그럼 죽게 내버려 두세요.”
“저 개는 너희 개냐?”
“우린 개를 데리고 다니지 않아요.”
노인은 소년의 동생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갔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올 필요가 없으니까요.”
소년은 한참을 간 뒤에야 뒤돌아보았다. 노인의 실루엣이 보였다. 윤곽조차 나이 들어 보였다. 소년은 나이프를 주머니에 넣었다.

   끊어진 다리 앞에서 잠시 멈춘 소년은 구릉을 타고 넘어가는 쪽을 택했다. 얼마 전에 내린 비 탓에 가느다란 물길이 났으나 대부분 말라버린 양재천을 가로질러 제방의 사면을 기어오른 소년은 타다 만 그루터기 사이로 희미하게 남은 산책로를 따라갔다. 어느새 소년을 앞지른 개가 저 앞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소년은 개가 고개를 돌렸을 때 맹견퇴치기를 겨냥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개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앞서갈 뿐이었다. 소년은 반파된 건물 뒤쪽으로 내려갔다. 발아래 깨진 기왓장들이 밟혔다. 개는 건물 앞쪽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위가 희붐해졌다. 받침대가 부서져 땅바닥에 처박힌 물탱크에서 물을 받아 빈 수통들을 채웠다. 소년은 귀를 곤두세우고 반파된 건물 내부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삼십 분 뒤에 소년은 동생과 함께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사람이 드나들 수 없을 만큼 작은 창이 하나 딸린 방을 찾아냈다. 창은 빛가림 필름 덕분에 거미줄 모양으로 금이 가기는 했으나 부서지지는 않았다. 오른쪽 귀퉁이가 조금 떨어져 나간 터라 외려 밖을 살피기에 좋았다. 소년은 동생이 잠자리를 마련하는 동안 가스버너에 불을 붙였다. 코펠에 쌀을 조금 넣은 뒤 부글부글 거품이 일자 라면을 넣고 함께 끓였다.
“저 개한테도 뭘 좀 줄 수 없을까.”
“개는 우리를 사냥하려는 거야.”
소년은 침낭 위를 더듬어 동생의 발을 찾았다. 동생의 앙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의 발을 주무르는 손에 점점 더 힘을 줬다. 동생이 잠든 걸 확인한 소년은 창문 쪽으로 다가가 바깥을 살폈다. 유리창의 깨진 틈으로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웅크린 개를 볼 수 있었다. 소년은 문이 잠긴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동생 옆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어둡고 조용한 세계가 소년에게 밀려왔다.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잠에서 깨면 필사적으로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동생은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을 때도 있었고 똑바로 누워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소년 쪽을 향해 누워 있지는 않았다. 소년은 잠든 동생의 얼굴에 깃든 고통과 불안을 볼 수 있었다. 소년은 동생의 눈을 덮은 머리칼을 쓸어 올려주거나 침낭의 헤드를 끌어당겨 주거나 흐트러진 담요를 바르게 펴주었다. 동생이 잠든 동안 소년이 하는 행동들에는 오래전 어겨버린 약속을 뒤늦게 지키려는 사람처럼 허둥대는 면이 있었다. 소년은 되도록 동생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지 않으려 애썼다. 오래 보면, 낯설었다. 그럴 때면 소년은 이 세계에 오직 자신과 동생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층 긍정적으로 세계를 보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서울이 폐허가 되기 전, 이제는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감정이었으나, 그때 소년은 이 세상에 오로지 자신뿐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동생이 소년의 일상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극히 적었으나 언제부턴가 동생은 소년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변화는 너무나 순식간에 이뤄졌기에 소년은 원래부터 자신의 내면에 그런 생각과 감정들이 있었던 거라고 믿었다. 도시의 도로가 끊기고 빌딩이 무너지고 색깔이 단조로워지면서 소년의 내부에서도 무언가가 툭 끊어져 나가거나 붕괴했으며 결국에는 폐허가 된 도시를 닮아 단조로운 잿빛의 감정만이 남게 되었다. 잿더미에서 찾아낸 사리처럼 소중하고도 쓸모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니까 때로는 폐허가 된 이 서울이 소년에게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내면에서 설계되고 건설된 도시가 아닐까 싶었다.


잠에서 깬 소년은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을 한 번 들여다본 뒤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소년은 외투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누군가 건물로 다가오는 듯했다. 사람이라면 이처럼 밝은 대낮에 함부로 발소리를 내며 부주의하게 돌아다니지는 않을 거였다. 기척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킁킁대는 소리와 울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소년은 동생이 눈을 뜨자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소리는 더 복잡해졌다. 점점 커지고 분명해졌다. 한둘이 아니었다.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이윽고 소리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러고 나서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소년은 스르르 무너지듯 창문 아래 쭈그리고 앉았다.
“괜찮아. 멀리 갔어. 좀 더 자.”
동생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소년은 깨진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빛이 머문 곳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빛은 이처럼 격렬하게 추락해 부서지는데 왜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소년은 까무룩 잠에 빠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더러운 바닥에 부려진 얼룩 같던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소년은 침착하고 능숙하게 한 컵 분량의 물을 끓여 전투식량이 든 봉지에 부었다. 십오 분이 지난 뒤 동생을 깨워 나눠 먹고 배낭을 꾸렸다.
“달이 떴잖아.”
“그래도 가야 해.”
달빛은 스산했다. 소년과 동생은 깨진 기왓장이 깔린 길을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쓰러진 동상을 돌아 물탱크에서 물을 받아 수통을 채웠다. 건물의 무너진 쪽을 끼고 돌아 남쪽을 바라고 걸었다. 어디에선가 개가 나타났다. 달빛이 소년과 동생의 몸에서 그림자를 꺼내 주었다. 개도 그림자를 꺼내 쥐고 따라왔다.
“형, 저 개가 우리를 구해 줬어.”
“무슨 말이야?”
“낮에 개가 짖는 소리 못 들었어?”
“못 들었어.”
“난 분명히 들었어.”
“그게 무슨 상관인데.”
“발소리들이 개 짖는 소리 쪽으로 멀어져 갔거든.”
“그럴 리가 없어. 저 개는 성대가 없어.”
“아니야, 분명히 짖어댔어.”

   고속도로에 들어선 소년은 달빛에 훤히 드러난 하이브랜드 간판을 보았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택가들이 있어 음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현대자동차 빌딩은 꼭대기 층부터 중간 층까지 무너져 내렸지만 그 옆 기아자동차 빌딩은 비교적 멀쩡했다. 어느 층에서 잠깐 불이 밝혀졌다가 꺼졌다. 소년은 기아자동차 빌딩 옥상 끄트머리에 추락할 듯 걸쳐진 헬기를 보았다. 소년은 동생을 돌아보았다. 동생의 헬멧 위에서 달빛이 미끄러졌다. 커다랗고 검은 구름이 달과 가까이 있었다.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소년과 동생은 양재IC를 돌아서 지나갔다. 무너진 다리 건너편에 도착했을 무렵 달이 구름을 벗어났다. 비탈을 기어올라 고속도로에 다시 들어서자 어디선가 나타난 개가 형제를 앞질렀다. 동생이 나지막하게 휘파람을 불자 개가 뒤돌아보았으나 소년과 동생 쪽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소년은 동생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다. 동생의 가늘고 짧은 휘파람이 소년의 귓가에 여전히 맴돌았고 그 소리에 깃든 까닭모를 슬픔이 소년의 귓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소년은 차갑고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마치 그 공기에 슬픔을 억누르는 효력이라도 있다는 듯이.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소년이 날렵하게 동생의 손을 붙잡고 몸을 낮췄다. 수백 대는 되어 보이는 화물트럭들이 뒤엉킨 곳에서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년과 동생은 타이어가 타버려 주저앉은 버스에 기대고 앉았다. 형제는 말없이 숨을 골랐다. 호흡이 경쾌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년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형, 개를 찾는 거야?”
“아니야.”
“개는 저 승용차 반대편에 있어.”
“가야 해.”
소년과 동생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이마트 쪽에서 들려왔다. 도시가 일순 숨을 멈춘 듯이 고요해졌다. 서울에 아니 이 세상에 오직 그 목소리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소리인 듯했다. 밤공기를 뚫고 날아온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했고 목소리의 떨림까지 생생하게 느껴졌기에 마치 바로 옆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단 한 사람의 목소리일 뿐이었는데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가 다른 모든 소리를 삼켜버렸다. 이마트 옥상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조금 뒤 그림자는 주차장으로 추락했다. 추락하기 직전까지 그림자는 누군가의 이름을 되풀이해서 외쳤다. 차분하기 이를 데 없던 절규가 사라지자마자 다시 낮고 끈적끈적한 신음과 비명이 도시 전체에서 웅성거리며 피어났다.
“죽었을까?”
“그래.”
“살았을지도 모르잖아.”
“금방 죽을 거야. 밤이 새기도 전에.”
“형, 못 가겠어. 다리가 떨려.”
“쉴 곳을 찾아보자.”
소년과 동생은 컨테이너 박스를 발견했다. 창문은 깨졌지만 창살은 그대로 박혀 있었다. 소년은 나이프를 문틈에 쑤셔 넣고 손잡이를 돌렸다. 문틈이 벌어지기는 했으나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안쪽에 걸쇠가 걸린 듯했다. 소년은 문틈으로 넣은 나이프를 조심스레 위아래로 움직였다. 무언가 칼날에 걸렸고 이내 딸그락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컨테이너 박스 내부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온 달빛이 내부를 넉넉하게 채웠다. 방금까지도 누군가 머물다 간 것처럼 사람의 흔적이 느껴졌다. 소년은 헬멧을 벗는 동생을 도와준 뒤 배낭을 내려놓고 창살 사이로 바깥을 살폈다. 소년은 구석에 있던 의자를 구멍 아래쪽으로 가져왔다. 의자에 올라 컨테이너 지붕 위로 머리를 내밀어 주위를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소년은 동생 옆에 앉았다.
“다리 주물러 줄게.”
“괜찮아.”
“다시 가야 해.”
“여기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남쪽으로 갔겠지.”
“죽었거나?”
“응.”
“형, 저 소리 들려?”
“매일 밤 듣는 거잖아.”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야.”
“내가 확인해 볼게.”
소년은 한동안 컨테이너 벽에 귀를 붙이고 있었다. 동생 옆으로 돌아온 소년은 다시 동생의 종아리를 주물렀다.
“아무 소리도 아니야. 걱정하지 마.”
형제는 각자의 생각에 골몰했다. 거인이 거대한 철판을 손에 쥐고 천천히 우그러뜨리는 듯한 불쾌한 쇳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소리 누군가 들었을까?”
“들었겠지.”
“사랑하는 사람이었겠지. 부인이거나 자식이거나.”
“그랬겠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어딘가에 숨어 숨죽여 울고 있겠지.”
“형, 그 울음이 들려. 이 컨테이너 박스인 것 같아.”
“……헬멧 써.”

   나이프를 쥔 소년이 앞장서 컨테이너 박스를 나갔다. 동생이 소년의 뒤를 따랐다. 저 멀리 트럭 아래 앉았던 개가 일어섰다. 남쪽으로 뻗어 나간 고속도로는 끝없이 이어졌다. 폭격에 무너진 만남의 광장 휴게소 뒤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잠깐 들렸으나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주차장 한가운데 더러운 물이 고인 폭격 구덩이가 있었다. 소리 없이 일렁이는 웅덩이에서 무언가가 자맥질이라도 하는지 물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차갑고 끈끈한 촉수처럼 다가와 소년과 동생을 휘감았다.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소리인 것도 같았다. 컨테이너 박스 주변의 다른 차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기를 벗어나야 해.”
소년은 휴게소 주차장으로 우회하는 길이 아니라 컨테이너 박스 주변의 뒤엉킨 차들을 넘어가는 쪽을 택했다. 소년은 찌그러진 승용차의 지붕에 오른 뒤 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생이 지붕에 올라서자 소년은 관광버스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불에 타 일그러진 좌석들뿐이었다. 소년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버스 지붕을 타고 넘어야 할 듯했다. 나이프를 주머니에 넣은 소년은 창틀을 딛고 버스 지붕의 찢어진 틈을 통해 지붕 위에 오를 수 있었다. 소년은 엎드려 손을 내밀었다. 동생도 소년과 같은 방식으로 창틀을 딛고 지붕에 올랐다. 돌출된 에어컨에 발이 걸린 소년은 휘청거리다 배낭의 무게 탓에 반대편으로 추락했다. 머리를 어딘가에 부딪기는 했으나 배낭이 완충작용을 해준 덕분에 충격은 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소년은 차와 차 사이에 오른쪽 다리가 끼었다는 걸 알았다. 동생은 헬멧을 벗고 지붕 위에 엎드렸다.
“형, 괜찮아?”
“괜찮으니까 헬멧이나 써.”
소년은 배낭의 허리벨트와 가슴벨트를 풀고 우선 틈에 낀 다리부터 끌어올렸다. 그러자 통증이 느껴졌다. 바지자락이 무릎까지 말려 올라와 그 아래 가늘고 메마른 다리가 드러났다. 소년은 희미한 달빛 아래서도 정강이와 종아리 사이가 심하게 긁힌 걸 볼 수 있었다. 곧이어 상처에서 배어 나온 핏물이 종아리를 타고 느릿느릿 흘러내렸다. 소년은 버스 지붕에서 내려오는 동생의 엉덩이와 배낭을 받쳐 주었다. 벗어 놓은 배낭을 바닥으로 던진 뒤 조심스레 내려간 소년은 급소를 맞은 것처럼 뻣뻣하게 쓰러졌다. 동생이 그 옆으로 풀썩 뛰어내렸다. 동생은 소년을 배낭까지 끌고 갔다. 배낭에 등을 기댄 소년은 한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버스 지붕에서 개가 형제를 내려다보았다. 소년은 배낭에서 더러운 속옷을 꺼내 찢어 다친 다리를 싸맸다. 소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소년은 일어나서 한 걸음 내딛더니 다시 배낭에 기대어 앉았다. 소년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밤은 깊어 갔고 새벽은 가까워졌다. 남쪽 하늘을 바라보는 소년의 두 눈에 물기가 맺혔다.
“이제 우린 갈 수 없는 거지?”
“갈 수 있어.”
“갈 수 있다면 지금 가.”
“지금은 갈 수 없어.”
버스 짐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년은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지붕에서 뛰어내린 개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차체만 남은 승용차들 틈으로 짐칸의 문이 스르르 올라갔다. 짐칸 내부는 어두웠지만 야행성 동물의 두 눈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두터운 점퍼를 입은 사십대의 여자가 무릎걸음으로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다쳤니?”
“예.”
“내가 봐도 될까?”
여자는 소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여자는 붕대 대신 묶은 소년의 속옷을 풀어 상처를 살폈다. 여자가 소년의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는 동안 소년은 버스 짐칸에서 나오지는 않은 채 얼굴만 내민 소녀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두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먼 하늘에 동살이 잡힐 무렵에는 소년과 동생도 낯선 모녀와 함께 버스 짐칸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소녀는 잠시 멈췄던 일을 다시 시작하듯 숨죽여 울면서 기침을 했다. 그들은 딱딱한 빵을 나눠먹었다. 소년의 동생이 헬멧도 벗지 않은 채 돌아앉아 빵을 먹어도 모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모녀는 엔진룸 격벽 쪽에 깔린 매트리스에 누웠고 그 맞은편에서 소년과 동생은 침낭을 꺼냈다. 동생의 헬멧이 짐칸 내부의 구획된 벽에 부딪히거나 천장에 부딪히며 텅텅 소리를 냈다.
“잘 때만이라도 그 헬멧은 벗으렴.”
소년과 동생은 대꾸하지 않았다. 소년은 뭉친 옷가지를 동생의 목덜미 아래에 넣어 주었다. 헬멧 속에서 동생은 소리 죽여 숨 쉬었다. 모녀는 서로를 껴안고 잠들었으나 소녀는 잠을 자면서도 울었다. 서툰 연주자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야상곡처럼 짐칸 내부를 떠도는 울음이 낯설고도 익숙했다. 날이 새면서 버스 짐칸 내부도 흐릿하나마 조금씩 밝아졌다. 모녀가 얼마나 오래 이곳에 머물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누군가의 부재는 알 수 있었다. 매트리스는 두 모녀가 눕기에는 조금 컸다. 코펠 뚜껑 위에 놓인 세 개의 숟가락은 쓸쓸하게 빛났다. 소년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것들을 생각했다. 사라진 것들 가운데 다시 돌아올 것들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을 생각했다. 소년이 잃은 것들은 대부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 때문에 새로운 슬픔에 잠기지는 않았다. 소년의 아버지는 지난겨울 이미 죽어가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겨울 내내 흔히 볼 수 있었던 네이팜탄에 불태워진 사람들보다 앞서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아버지가 고통스레 잠들었던 중환자실의 인공호흡기 모니터에 점멸하던 신호처럼 소년의 의식도 꺼졌다가 켜지기를 반복했다.

   소년은 주위 사람들이 차례차례 납득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 가는 걸 지켜보았다. 어느 순간 현실은 이해의 영역을 벗어났고 그와는 무관한 또 다른 진실이 되었다. 눈을 떠보면 순식간에 사방이 안개로 자욱해지듯 서울을 엄습한 안개는 단 한 번의 습격으로 모든 걸 점령했다. 소년의 손 안에서 꿈틀대던 동생의 손가락처럼 차갑고 적대적인 슬픔이 도시를 짓눌렀다. 헝클어뜨린 직소퍼즐의 퍼즐 조각처럼 부서진 도시는 원래 형태가 어땠는지 알 수 없는 미로가 되었고 그 미로 안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길을 찾아 떠나지 않는 것뿐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으나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 둘 소년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떠났을 때 소년은 이제 남은 건 동생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도 소년에게서 동생을 빼앗아갈 수 없었고 동생 스스로 떠나는 걸 용납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따금 소년은 동생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불분명한 형상이 되어 꿈에 나타나거나 깨어 있는 동안에도 재빠르게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그 생각은 소년을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게 했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무시무시한 죄를 저지른 듯한 기분이 들었고 용서받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듯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서울이 폐허가 된 뒤 악몽이 아닌 꿈은 없었다. 폐허 이전의 서울을 거닐어도 그것은 악몽이었다.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거리였으므로.

   해가 질 때까지 그들은 누워 있었다. 소녀는 여자의 품에서 기침을 하며 간헐적으로 훌쩍였고 밤이 되자 울음을 그쳤다. 여자는 소년의 상처에 소독약을 발라 주고 깨끗한 옷을 찢어 붕대처럼 감아 주었다. 소년의 다리에서는 희미한 악취가 났다. 소년은 남은 아스피린의 반을 여자에게 건넸다.
“이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구나.”
“받을 수 없는 걸 저도 이미 받았는걸요.”
밤새 그들이 한 일은 오줌을 누기 위해 잠깐 밖에 나갔다 온 것뿐이었다. 소녀는 아스피린을 물과 함께 삼켰고 점점 기침이 줄었다. 사흘째 되던 낮이었다. 인기척에 눈을 뜬 소년은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소녀를 보았다. 소년은 팔을 뻗어 소녀의 손목을 힘껏 잡았다. 소녀는 손에 쥔 나이프를 빼앗기지 않으려 애를 썼다. 소년과 소녀는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숨을 뱉어내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눈물이 갈쌍갈쌍한 소녀의 눈에 깃든 증오를 보았다. 이윽고 소년은 빼앗은 나이프의 칼날을 접어 소녀의 손에 건네주었다. 소녀는 주저하다가 낚아채듯 나이프를 돌려받았다. 소녀는 여자 옆에 조용히 누웠다. 밤이 되자 소년은 배낭을 꾸렸다.
“얘야, 어딜 가려는 거니?”
“남쪽으로요.”
“그 다리로는 무리야.”
“아주머니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는구나.”
“아주머니도 묻지 않았으니까요.”
“우리는 남쪽에서 왔어.”
“……상관없어요.”
배낭의 끈을 죄던 소년의 손에서 스르르 끈이 빠져나갔다. 소년은 가늘게 떨리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미열이 오른 소년은 눈앞이 침침했다. 자정 즈음에 여자가 소년의 머리를 잘라 주었다. 소녀는 여자가 지시하는 대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가윗날이 마주치며 내는 서걱서걱 소리가 평온하게 들렸다. 소녀는 실수인 것처럼 손전등 불빛으로 동생의 얼굴 쪽을 훑어보기도 했다. 헬멧의 윈드쉴드를 내려놓은 동생은 굳이 얼굴을 돌리며 피하지는 않았다.
“정말 갈 거니?”
“가야 해요.”
총소리 탓에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그들은 총성의 길고 긴 여운에 귀 기울였다. 어디선가 단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을 뿐이지만 그 총알은 각자의 가슴에 박혀 무수히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총알은 산탄이었고 모든 상념은 총알이었다. 이윽고 무언가가 짐칸의 문을 긁어대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문을 긁는 소리는 처연하기까지 했다.
“들어오고 싶은가 봐.”
“그럴 수 없어.”
“형도 알잖아. 그래야 한다는 걸.”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소년이 짐칸의 문을 들어 올리자 개가 절뚝이며 걸어 들어왔다. 개는 동생 옆에 다가가 엎드렸다. 동생이 개의 머리를 쓰다듬자 개가 낑낑거렸다. 소녀가 손전등으로 개를 비추었다. 개는 다리에 상처를 입었고 상처에서는 피가 흘렀다. 소년은 여자에게 건네받은 소독약으로 상처를 소독해 준 뒤 개 앞에 물을 담은 그릇을 놓아두었다. 캄캄한 버스 짐칸에는 개가 그릇에 담긴 물에 혀를 적시는 소리만 들렸다.

   아침 무렵 개는 첫 번째 강아지를 출산했다. 정오까지 개는 세 마리를 낳았으나 모두 사산이었다. 네 번째 강아지는 숨이 붙은 채 태어났으나 해가 질 무렵에는 이미 딱딱하게 굳었다. 그때까지도 죽은 새끼들을 핥던 어미 개는 밤이 깊었을 때에야 꾸륵꾸륵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소년은 죽은 채로 태어난 생명을 생명이라 부를 수 있는지와 같은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쓸모 있는 생각이란 이제 가능하지 않은 듯했다. 네 마리의 죽은 강아지들은 모두 기형이었으나 누구도 그 사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기형이거나 아니거나 어미 개에게는 한결같은 새끼였을 것이므로. 잠든 개의 숨소리는 예사로웠다. 방금 네 마리의 새끼를 잃은 개의 숨소리치고는 평온했다. 그래서 그 평온함이 불길하게 여겨졌다. 모두가 잠든 대낮의 도시가 두렵듯이 고요히 잠든 개가 두려웠다. 저 개는 깨어나는 순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것이었다. 소년은 개가 느낄 공포를 짐작했다.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소년과 동생은 목을 맨 어머니를 보았다. 천장에 매달린 어머니를 끌어내릴 때 스치기만 해도 온몸에 생생하게 전달되던 딱딱하면서도 피로한 살갗의 감촉들. 소년은 잠든 어미 개의 품에 안긴 강아지들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다. 어머니의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을 만졌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소년은 손가락을 통해 배신감이라는 모호한 감정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밤낮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운 그들은 피로했으나 쉬이 잠들지 못했다. 아침이 가까워지자 모녀가 먼저 잠들었다. 소년과 동생은 서로 어깨를 붙인 채 격벽에 기대어 어둠이 꺼져 가고 빛이 부풀어 오르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형, 난 사람이야?”
“넌 내 동생이야.”
“난 사람이야?”
“넌 내 동생이야.”

   개의 다리가 낫기 전까지는 한 걸음도 꼼짝하지 않겠다는 동생 옆에 우두커니 앉은 채 소년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감지하기 힘들 만큼 조금씩 아침이 오는 시간이 빨라졌다.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는 건 좋지 않았다. 동생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은 이제 증오심보다 호기심에 가까웠다. 개는 동생의 발치에 웅크린 채 소리 없이 잠들었다 깼으며 소년이 죽은 새끼들을 고속도로 가장자리의 땅을 파고 묻어 주었을 때도 무심했다. 차분하게 고통을 견디는 개에게는 낯설고 기이한 신성이 엿보였다. 관광버스 짐칸에는 아직 생수가 충분히 있었으나 식량은 넉넉지 않았다. 소년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날아온 먼지들이 섞인 공기를 들이마시며 허기를 채웠다. 개의 상처가 낫는 속도보다 소년의 상처가 낫는 속도가 더뎠다. 개가 절름거리지 않게 되었을 때도 소년은 오른쪽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었다.

   “형, 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오래, 아주 오래 살 수 있어.”
“일 년, 이 년, 어쩌면 오 년쯤?”
“내가 죽기 전까지는 넌 죽지 않아.”
“형이 죽으면?”
“난 아주 오래 살 생각이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짐칸에는 습기 찬 공기가 가득했고 버스 내부로 들이친 빗물이 차체의 갈라진 틈으로 스며들어왔다. 버스를 두드리는 빗소리는 단조였다. 공기에 섞인 악취는 더 이상 악취로 여겨지지 않았다. 개는 앞발로 문을 긁어댔다. 소년이 문을 열어 주자 개는 잠깐 비 내리는 세상을 바라보더니 투신이라도 하듯 짐칸 밖으로 뛰쳐나갔다. 비 탓에 공기는 차가워졌고 모녀는 서로를 껴안아 체온을 나누며 잤다. 소년은 동생의 헬멧을 벗겨 준 뒤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었다. 다시 헬멧을 쓴 동생은 침낭 속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잤다. 동생의 숨소리가 낯설었다. 비구름 때문에 사위는 어두웠고 짐칸은 더욱 어두웠다. 해질 무렵의 스산함과 해 뜰 무렵의 긴박함이 뒤섞인 잿빛 대낮이었다. 소년은 스스로 상처를 돌보았다. 상처에는 딱지가 내려앉기 시작했으나 신경이 손상된 듯 저릿한 통증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예전처럼 걸으려면 한 달쯤은 지나야 할 것이라고 여자가 말했을 때 소년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비에 젖어 갔다. 폐허의 어느 구석에서는 이 빗물을 받아먹으며 자라는 생명이 있을 거였다. 소년은 화분에 심긴 병든 식물 같았다. 화분은 양지바른 곳에 놓이지 못했고 식물은 간신히 화분만큼의 흙을 움켜쥔 채 중력을 견뎠다. 소년은 물이 증발하는 것처럼 다른 모든 것들도 조금씩 증발한다고 생각했다. 도시도 그렇게 폐허가 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입자들로 부서져 조금씩 조금씩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하나의 온전한 도시가 완벽하게 폐허가 되면 도시의 일부였던 먼지들이 어디엔가 차곡차곡 쌓여 새로운 사막이 탄생하는 거였다. 소년은 허물어진 서울이 이곳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광경을 꿈인 듯 보았다. 그 서울은 예전의 서울로 이루어졌으나 예전의 서울은 아니었고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서울이었으나 폐허가 된 서울과 전혀 무관한 서울도 아니었다. 익숙한 소리와 처음 듣는 낯선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고 이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거리를 걸었다. 그곳은 소년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지만 오래전부터 거주했던 마을처럼 편안하고 아늑했다. 한쪽 모서리가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발부리가 차여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지 않았다. 소년은 이미 그곳에 그처럼 한쪽 모서리가 튀어나온 보도블록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도시의 모든 보도블록은 점자블록이었다. 소년이 잠에서 깼을 때 비는 그쳤지만 짐칸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밤이었다. 소년은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렸다. 문을 긁어대는 소리에 소년이 문을 열어 주자 비에 흠뻑 젖은 개가 서 있었다. 개는 그 앞에서 몸을 부르르 흔들어 물기를 털어내고 짐칸 안으로 들어왔다. 그날 밤 내내 개는 감기를 앓았다. 소년은 기침을 하며 이따금 경련하듯 몸을 떠는 개를 지켜보며 밤을 샜다. 개는 죽어가고 있었다.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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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무척 흥미롭군요. 다음 회가 기다려지네요.

릴로32호

좀비물의 분위기와 비슷한것 같기도 하고… 양재IC쪽을 자주 지나가서 그런지 소설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져서 더 몰입되네요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무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요~

자몽 3호

지금의 서울을 떠올렸을 때 상상도 못할 분위기네요. 소설을 보기 전에 삽화를 봤는데 기울어진 빌딩이나 잔해가 된 더미들 보다는 그 세상에 소년과 동생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모습이 더 폐허와 같았어요. 거기에다 그런데 찬란한 서울에선 잘 보이지 않는 별들이 폐허가 된 서울의 밤하늘에는 '무수하게' 떠 있다는 표현이 인상깊었어요.

보름달8호

첫회가 무척 우울하게 느껴집니다. 항상 정신없고 복잡하던 서울이 이렇게 우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나는26호

폭풍전야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폐허가된 서울에서 소년과 동생, 모녀, 개가 어떤 삶을 이어나갈지, 왜 이렇게 된건지 그진실을 어떻게 풀어나가실지 이어질 내용이 기대되네요!

햇님18호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을 비롯해 배경은 음산하고 무섭네요. 자꾸만 얼굴을 가리는 동생..의 정체가 무엇이고 둘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국문17호

분위기가 우울한게 묘한 느낌이 나는 것 같네요. 다음 내용이 궁금해져요~

미소48호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잿빛느낌의 먼지가득한 서울이 떠오르네요 동생의 헬멧과 개는 어떤의미일지 계속 궁금해집니다.. 한스킨이라는 커다란 로고가 휘어져있다는 대목에서 바로 강남거리를 떠올렸었는데 맞았네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너무 궁금합니다!

행복한46호

삭막한 도시 서울. 안그래도 삭막한 이 도시가 소설 로 인해 한층 더 낯설고 우울한 회색도시로 느껴지네요.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됩니다.

앵무5호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폐허가 된 서울이 외려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요? 도시가 완전히 죽어버림으로써 비로소 살아숨쉬는 유기체가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