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반 클리프 외 1편

 

  리 반 클리프*

 

 

 

 

   그를 기억하나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모래바람 속에서 시가를 질겅이며 노려보는 곳에 그는 서있었죠. 하늘로 날아오를 듯 찢어진 눈꼬리에 힘겹게 매달고 있던 매부리코와 날카롭게 다듬어진 콧수염, 장인이 갈아 놓은 듯 날 선 턱은 절제된 검은 슈트와 어울려 어떤 죽음도 깍듯하게 만들었습니다. 선한 악마성이라고 할까요. 악당을 노리는 주인공의 눈이 노련한 사냥꾼의 것이었다면 악당으로 변신한 그의 눈은 종말과 싸우는 야수의 그것이었습니다.

   기억하시죠? 이스트우드의 빠른 권총에 쓰러지던 매순간 그가 응시했던 공허를. 쓰러진 악당을 뒤로하고 망토를 휘날리며 지평선의 점으로 사라지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내게 해피엔딩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은 그가 풍기던 운명의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이 생에서 치러야하는 역할, 그러나 한 발 물러서 모든 것을 알아버린 이가 도리 없이 감당해야하는 막다른 이성의 비극이 그것입니다. 거기에는 그가 죽여야 했던 이들을 축복하는 냉소와 그를 노리는 총구를 향한 연민이 잘 정돈되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죠.

   혹시 기억하십니까? 배우 리 반 클리프의 배후는 오직 허공이라며 메아리치던 총성을, 심장을 후비던 햇볕을, 사막의 가운데로 등 떠밀던 열기를, 세상에 끝이 있다면 마지막 낭떠러지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기는 공포와 똑바로 눈 맞추던 그의 화약 냄새 같은 것이라고, 그렇게 잦아들던 말굽소리를.

 

 

   * 기억하시죠? 70년대 유행했던 서부영화에서 악당으로 자주 등장했던 개성적인 이 배우를.

 

 

 

 

 

  화장실 우주론

 

 

 

 

   화장실에 간다. 지퍼를 내리는 순간 육중한 뭔가가 덮친다. 안에서 똥 누는 이가 만드는 냄새는 핵폭탄 수준이다. 숨을 내뱉고는 들이마시지 않는다. 오래 참았던 오줌은 하염없다. 가슴은 터질듯하고 검붉게 타들어가는 얼굴은 폭발 직전이다(소변기 위에 거울은 왜 달아놓았을까).

   몇 발작 안 되는 화장실 입구까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공간이 무한대로 팽창하기 시작한다. 우주의 크기는 무한하다.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 그렇다. 아무리 가도 끝에 달할 수 없는 것이 무한이다.

 

   최대한 급한 양만 처리하고 다이빙하듯 화장실에서의 탈출을 시도한다. 무한의 끝에 닿으려는 시도는 무모하지만 이 우주에 가득 찬 향기는 무모함에 충분한 동기를 부여한다. 한 순간, 아니 하나의 영원 동안 나는 기억을 잃었다.

   나는 한 우주의 밖에 서 있다. 어쩌면 화장실 안에서 향기와 싸우던 주체와 나는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다. 조금 전까지 같은 우주에 있었지만 어떤 선택의 차이로 다른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같은 기억을 가진 존재일 가능성 말이다.

   거칠게 들이마신 첫 숨에는 똥냄새의 잔향이 진하다. 복도에서 한 번의 헛구역질,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다. 뭔가가 끼었다. 허리를 숙여 이물질을 찾으면서 온힘을 다해 다시 지퍼를 올린다. 손가락이 낀다. 아프다.

 

   고통은 작은 비명을 흘리고 인기척을 느낀 고개는 천천히 앞을 본다. 화장실이 가진 공간의 크기는 변하지 않았다. 안에서 볼 때 무한한 우주가 밖에서 보니 유한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왜 일까?

   도서관 복도에 낯익은 여자 사서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애써 외면한다. 지퍼는 아직 올라가지 않고 속옷은 밖으로 나와 당당하다. 그 순간 시간이 팽창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무한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올라가지 않는 지퍼와 여자의 시선 하나로 우주 바깥의 시간이 무한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현대 우주론이 내민 답은 명쾌하다. ‘외부관측자에게 무한히 긴 시간은 내부관측자에게 매순간 무한히 넓은 공간으로 인식된다.’**

   돌아선 여자 웃음을 참지 못한다. 당분간 집에서 일할 계획이다.

 

 

   ** 브라이언 그린의 『멀티 유니버스』중에서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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