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산책 외 1편

 

  그림자 산책

 

 

 

 

   가까이하면 감전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드는,

   딱딱한 밤

   그림자를 두고 잠을 청해 본다

 

   그간 그림자와 붙어먹었다 하지만

   몇 번이던가, 그림자와 결별하려고 돌아섰던 순간이

 

   나를 옮겨 적던 그림자가

   어엿이 내 몸의 서체를 흉내 내고 있다

   중심이 흔들린 날에도 함께 요동친 그림자

   가능한, 혼자는 행동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세운 모양

 

   내게 묶여 부자유스럽겠지 했더니, 외려

   나를 묶어 놓고

   떠나지 않더니

   빛 한 번 못 보고 얽매인 그림자의 순애(殉愛)

 

   물소리처럼 무념무상으로 도착하는 밤

   그림자에 가려져 내가 안 보인다

   나의 비좁은 세계를 빠져나와

   그림자를 통과하던 암울한 일식의 날들

 

   어쩌지요, 사는 동안 호락호락 떠날 것 같지 않은데

 

   그림자는,

   보기 싫어도 슬며시 보게 되는 제 몸에 난 흉터처럼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어떤 연민이랄까

 

   그림자에 젖을 물려 보는 밤

   36.5도의 체온을 지닌,

   또 하나의 심장이 뛰었다

 

 

 

 

 

  물품보관함

 

 

 

 

   안을 들여다보려는 순간부터

   위험한 상상은 만들어진다

   틈이 보이지 않을수록 증폭되는 상상

   비밀의 부피가 커짐에 이르러

   이건 시한폭탄이 될 조짐

   공간이 꾸미는 음모는 안전하고 깊다

   그러나 간절함 속에 담긴 누추한 살림을 보면 눈물겹다, 어쩌면

   저 안의 세계엔 다 써버린 시간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수도 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선 잃어버려야 하듯

   비우고 비워야만 더 가득 채워지는 반전이

   오롯이 사각형의 비밀을 지니게 한 걸까

   물건을 맡긴 사람이 물건의 주인이 아닐 때도 있지만

   맡긴 물건조차 까마득히 잊고 싶을 때가 있을 터

   이를테면, 한 영혼을 하늘 끝으로 보낼 흉기라든가

   탯줄에 돌돌 말린 갓난아이의 차압된 울음소리 같은

 

   잠긴 문

   들끓는 어둠

   무슨 비밀을 감추고 있는지

   굳게 다문 입

   맡긴 시간이 부패하는 동안

   밖은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가 발굴하기 전까지는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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