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령(山嶺)에서 외 1편

 

  산령(山嶺)에서

 

 

 

 

   달이 가깝다

   여기서는 아주 외롭게

   달을 신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저렇게 신발자국을 내놓았을까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에

   나도 발을 집어넣고 싶다

 

   벼랑에 뿌리내린 소나무,

   바위를 뚫고 나온 흰 뿌리들,

   허공에서 연약하게 꼼지락대는 발가락들,

 

   벼랑에 뿌리 내린 강인한 정신에게서

   나는 가장 연약한 맨발을 본다

   바람에 발을 집어넣고 흔들리는

   퍼득이는, 저 나무의 맨발의 비상

 

   여기서는 아주 가깝게, 아주 높게

   무언가를 신고 있는 존재들이 잘 보인다

 

 

 

 

 

  아침인 저녁에게

 

 

 

 

   어스름 내릴 무렵 잠 깨면 큰누이가 밥을 짓고 있었다 아침인가 싶어 서둘러 밥 먹고 책보 메고 방문을 열면 큰누이가 웃으며 학교 늦었는데 얼른 가야지 하는 얼굴로 치마 같은 길을 열어 주었다 학교의 유리창이 보였다 아침은 길가 코스모스 허리를 붙잡고 자꾸만 이상하게 침몰해 가고 있었다 교실에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고 선생님은 아직 출근하지 않으셨다 유리창에 새떼가 지나갔다 낙수 받는 홈통으로 별빛이 찌클어져 하나 둘 운동장 잡풀들을 적셨다 빈 교실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며, 나는 새떼처럼 지나가는 아침인 저녁에게 처음으로 고요함과 쓸쓸함을 배웠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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