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스키니 진을 입는다 외 1편

 

  나무도 스키니 진을 입는다

 

 

 

 

   내가 스키니 진을 입은 나무라서 이상한가요?

   이별했거든요, 딱따구리를 불러 배꼽에 피어싱 하고

   옹이무늬 배꼽티를 입고 다닐래요

   저녁노을을 삼킨 습기 찬 공기에게

   밤새도록 아침이슬로 무지갯빛 염색을 받고

   매일매일 색 다른 나뭇잎 가발을 쓸 거랍니다

   나는 쇼윈도의 마네킹보다

   햇살로 화장을 아주 진하게 할 거라구요

   잘록한 쇄골에는 꽃송이 향수까지 뿌리려구요

   이 향기에 한눈 판 새들은 텃새가 되어버리고

   매미 울음에 반한 산짐승들이 내 허리에 몸을 비비다

   한 움큼 털이 뽑혀 가슴을 하얗게 드러낸 한여름,

   나는 겉옷을 더 피어내어 푸르른 척할 거예요

   한때는 흙이 바람에 펄럭이는 치마였는데

   이제는 속살을 내비치는 일은 없을 테죠

   나는 뿌리라는 천 개의 다리를 가졌지만,

   떠날 구름에게는 다리 하나도 내놓지 않을래요

   풀벌레 소리가 우듬지에서 말라 버석거려도

   몸을 옮겨 심지 않고 빗줄기가 나를 찾아오게 할래요

   뿌리를 깊숙이 뻗으면 뻗을수록

   흙이 스키니 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오늘따라 허벅지가 꽉 조이는군요

 

 

 

 

 

  나는 기차소리를 듣지 못하면 소화가 안 된다

 

 

 

 

   사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늙은 역사에는 가난한 별들만 많다

 

   고양이의 눈빛엔 하늘이 밥상으로 보이는 역,

   별자리 밑반찬들로 하늘이 점점 좁아진다

   누가 저렇게 한상 차려 놓고 간 걸까

 

   철로의 자갈이 서릿발을 눌렀나

   하늘밥상의 오른 다리가 기울었다

   손등이 붉어진 여인의 귀밑머리가 이어지는

   철로로 함박눈이 엎질러지고 말았다

 

   그날 저녁술을 들지 못한 아이들은

   날이 어둡도록 기차의 울림을 기다리곤 했다

 

   나는 그런 역의 플랫폼이 좋았다

   열차의 문을 나보다 먼저 열고 들어간 반딧불

   산바람에 자꾸만 밀려오는 풀벌레 울음은

   푸른 깃발이 되어 막차를 떠나보내고

 

   나는 밤하늘 앞에 우두커니 앉아 수저를 들어 본다

   내 뱃속에 황소자리 하나가 자리를 잡는다

   네 개의 위가 몸속에서 칙칙폭폭 떨린다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기차소리를 듣지 못하면 소화가 되지 않는

   쓸쓸한 속쓰림이 가득한 늙은 역사에서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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