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추억 외 1편

 

  불가능한 추억

 

 

 

 

   길을 걸었지

   이천년 대의 어느 오후

   아침부터 흩어져 간 비행운과 머리맡에 떠오른 초승달의 궤도를 쫓다 보면

   나무그늘에 잠시 머문 내 좌표쯤은 쉽게 알아낼 수 있겠지

   그게 어렵다면 북구의 황량한 초원에서 태어나 지금 막 도착한 저 바람의 연대를 따져 봐야겠지

   아니지 쉽사리 국적을 바꾸는 바람은 어렵겠지 바람의 표본이라도 남아 있다면 몰라도

   심장을 발화점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

   언제 식어버렸는지 알고 있다면 뜨거웠던 날을 역추적해 보라는 말이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건 나만 보려 하기 때문이지

   방금 비둘기 한 마리 날아올랐어

   노선버스는 정확하게 정거장에 섰고 이 시간이면 늘 지나가는 그녀가 나타날 거야

   어쩌면 나는 괜히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쇼윈도에 비친 얼굴을 보며 머리를 다듬었겠지

   비행운이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어 혜성이었을까 생각에 잠겼지

   신화보다도 신비로운 생각이 탄생하고 있었지

   소멸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면 언제부터 구전되었는지 찾아보면 돼

   한 열 번째 인류의 기원이거나 원시생물의 멸종 시대였다고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잠시 살아 서 있었다는 흔적쯤은 남아 있지도 않겠지 다만

   그것이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르는 늙어버린 바람이 눈앞에 지나가거나

   초승달이 비행운을 그리며 날아오르거나

   어디선가 콧노래가 들려오거나

   그런다면 나무그늘 아래에 잠시 머물러 봐

   곧 동화책에서 봐왔던 그녀가 나타날 테니까

 

 

 

 

 

  묵시록 Ⅸ

 

 

 

 

   이렇게 앉아 노을 젖은 가을나무를 바라보는 일 함께 물들어 가는 일 낙엽 지듯 함께 무너지고 함께 묻혀버리는 일 이렇게 앉아 단풍과 노을을 무한히 닮아 가는 동안 어느 지평선은 새벽을 맞이한다 태양의 매장과 발굴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날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식사를 차리고 가족들 귀가하고 하루 일을 얘기하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이날 일어난 전쟁 이날 일어난 기적 늘 그래 왔으므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어제와 꼭 닮은 이날

 

   나는 지금 종말의 동시성을 언급하는 중이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시작이 하나였으니 종말도 하나

 

   죽다라는 말이 동사이듯 닮는다는 것은 일치하는 순간을 향해 서로 움직여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닮는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다 눈먼 새는 나비처럼 난다

 

   이날 모두를 잃고 우린 가을과 저녁과 단풍과 전쟁과 기적과 종말과 미친 듯이 닮아 간다 다음 계절은 기록으로만 남는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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