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병 속의 새 외 1편

 

  호로병 속의 새

 

 

 

 

   나는 책상 위에 널브러진 컴퓨터였으며 모니터였다

   나는 계산기였고 전화기였으며 휴대폰이었고 안경이었으며

   나는 보조탁자와 접대의자였고 4단 캐비닛 벽장이었다

   나는 물건들을 생산하는 공장과 배달의 시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얹혀 돌아다니는 상품이었다

   나는 이 마트에서 하늘의 별처럼 쌓인 잡화와 생활용품이었다가 쓰레기장에 태산처럼 쌓여 가는 물질과 에너지였다

 

   나는 문명의 호로병에 갇혀 새를 꺼내는 손이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리는 새의 마음이었다

 

   당신은 푸른 언덕의 수국이며 소나무 숲을 날아다니는 비둘기였다

   당신은 저녁하늘의 구름과 황혼이었으며 세차게 부는 편서풍이었다

   당신은 춘장대 앞바다에 뜬 섬이었으며 우르르 몰려가는 삼각파도였다

   당신은 백사장에 밀려온 소라고둥이었으며 물고기들의 냄새였다

   당신은 경계와 형태가 없이 삼라만상의 가면을 쓰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의식과 에너지 였다

 

   내가 뇌 속의 경계를 부수고 주둥이가 좁은 병 밖으로 나오자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눈이 하나인 검은 얼굴이 태양처럼 빛났다

   나는 왜 병속에서 나와야 했을까

   어둠과 빛의 베일에 가려진 당신을 보기 위해서는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한 것일까

   심장의 황금 피가 식어 불꽃 같은 의심이 만년설처럼 얼어붙는 순간이 오자 나는 다시 호로병속에 들어간 새의 마음이었다

 

 

   * 병속의 새 : 공안公安의 하나.

 

 

 

 

  넝쿨장미 안의 붉은 여왕

 

 

 

 

   찔레나무 흰 꽃은 어두웠고 배경의 관목 숲은 밝은 여름날 오후였네

   하늘의 흰 구름이 하회탈처럼 표정과 무표정을 동시에 보여주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여름날 오후였네

   넝쿨장미 안의 구미호가 허공에 붉은 눈을 걸어 놓았네

   붉은 눈들이 감시 카메라처럼 팔방八方을 보고 있을까 두려웠지만 나는 아름다운 눈들에 취해서 가까이 다가갔네

   조금씩

   조금씩

   부러진 못들이 자석에 끌려가듯이

   나가那伽뱀을 본 인간개구리들이 온몸이 법열法悅로 붉어지듯이

 

   아름다움에 중독이 된 내 안의 영혼에게 붉은 눈이 말했네

   너는 내가 시간의 강에 던진 조약돌이다

   너의 백일몽은 내가 뿌리에 물을 주고 있는 울타리의 넝쿨장미다

   나의 깊은 잠에서 너는 내가 손가락으로 집어올린 순간이자 영원이다

   너는 나의 사랑으로 피어난 인간의 얼굴을 한 넝쿨장미다

 

   두려워라

   메두사의 눈을 한 붉은 여왕이 내 심장을 쳐다보자 내 영혼이 테세우스의 방패처럼 빛을 내기 시작했네

   넝쿨장미 저편에 있는 지옥의 힘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리고 태양과 구름과 소나무가 푸른 돌의 아름다움으로 굳기 직전이었네

   심장에서 검은 태양이 떠올라 저승의 시간이 피처럼 흘러내리는 여름날 오후였네

   밤의 여왕이 올빼미 눈을 뜨고 내 삶의 미로를 빤히 들여다보는 여름날 오후였네

   넝쿨장미의 붉은 눈이 내 안에서 검은 용의 눈처럼 불타오르는 여름날 오후였네

 

 

   (기 발표작 개작)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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