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사냥

 

사슴 사냥

 

송진권

 

 

 

 

때없이 모란이 탐스럽게 피어오르고

머리 위론 포도송이가 휘늘어져 단내를 풍겼어요

호복에 변발을 한 사람들이 말을 타고 문 앞에 와 섰어요

눈이 쭉 째진 얼굴이 사슴 사냥을 가자고 했어요

빨랫줄을 걸어가 하늘로 오르거나

돌을 들어내고 개미굴 속으로

한없이 내려가야만 했어요

여러 색깔과 모양이 다른 길을 지나자

희끗희끗한 산이 펼쳐지고

사슴 떼가 풀을 뜯고 있었어요

개들은 길길이 날뛰며 사슴을 쫓아가고

사방에서 몰이꾼의 꽹과리 소리가 들렸어요

사슴 떼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튀어 달아나고

그 중 하나가 슬며시 내게 총을 쥐어주었어요

다가오면 쏴

쏘아 쏘란 말이야

총을 겨누었지만

끝끝내 쏠 수 없었던 그날의 사슴 사냥

속절없이 길이 터지고

머리며 등허리로 쏟아지는 발길을 받아내며

나는 사슴의 무리가 저 등성이에서

황혼으로 스며들어가

자작나무 숲이 되는 것을 보았어요

 

《문장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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