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들

 

침묵들

 

김원경

 

 

 

 

죽은 자작나무에서 버섯이 자라는 걸 본 적이 있다

죽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

손톱을 기르는 것처럼

 

육체가 조금씩 액체가 되고 수증기가 되고

말을 잃고 미세하게 돋아나는 불안을 얘기하자

나는 간신히 침묵이 떨어지는 순간을 본다

 

나의 이 불안이 누군가 죽음 이후에 심어 놓은

미세한 균사체가 아닐까 의심될 즈음

나는 자꾸만 투명한 내장을 꺼내서

최후의 수분까지 증발시키려는 순간과 악수한다

 

왜일까 왜 그래야만 할까를 생각할 때

이미 난 온몸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건

세수할 때마다 떨어뜨린 긴 속눈썹

파르르 떨고 있는 한 줄 현(絃) 위에서

발목을 잃은 무용수의 창백한 울음소리

 

때론 침묵이 너무 진지해

게바라의 별은 어느 날 전광판에서 더 빛나고 있다지만

바람 불지 않아도 바람개비는 계속 돌고 있다

 

점점이 떨어지는 눈처럼

서로 다른 속도로 흩날리며 다가와

읽혀지는 순간 머나먼 곳으로 사라지는 침묵들

 

침묵은 보호색을 가지고 있어

수천 개의 긴 문장을 투명한 액체로 쓰고 있다

나는 이 한 문장을 해독하는 데 한 생을 다 보내고 있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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