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빠귀를 시작할 것

 

지빠귀를 시작할 것

 

김안

 

 

 

 

 

성난 지빠귀 한 마리

녹슨 나무 꼭대기에 올라

모두가 버린 모두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노래는 지빠귀의 몫.

입 없는 사람들, 포식자가 되는 법을 잊어버린 맹수들이

매일 밤 몸 바깥으로 말들을 밀어내다가 저마다의 말과 말 사이에서 길을 잃어도

노래는 없고

태초의 독백만 내일 또다시 반복된다.

지빠귀의 언어로, 지빠귀의 언어로.

무감(無感)과 무통(無痛)의 천국에서

사람의 입을 만드는 것은 비명일 뿐.

그러니 지빠귀의 언어로

난폭하게 자라나는 납빛 건물 꼭대기에 오를 것.

그리고

흉골 속 낡은 악기를 꺼내 이 계절을 멈출 것.

말이 아닌 겯지른 어깨들로

말이 아닌 노래들로

선언할 것.

지빠귀의 언어로, 지빠귀의 언어로.

말을 포기할 때 노래가 시작되고

비로소

지빠귀의 언어로, 지빠귀의 언어로

지빠귀가 시작된다.

 

* 지빠귀 : 열여덟 살 옷공장 신발공장 가방공장 조선소용접공 대공분실 해고 징역 수배 다시 징역 장례 치르고 추모사 하다 보니 쉰둘. 20년지기가 정리해고 반대하며 129일 매달려 있다 목을 맨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다시 정리해고 반대하며 올라와 울다가 웃다가.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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