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첫사랑

 

권민경

 

 

 

 

버려진 러브레터 뭉치를 주은

어린 시절

저주가 시작되었다

모두 한 사람에게 보내진 편지

밤나무 숲에서 고기가 자랐다

 

나는 식사 전과 목욕 후에 남의 연애편지를 읽으며

미래의 애인 얼굴을 보았다

그건 못생기고 얼룩진 낱말

영과의 약속만 적힌 달력

영은 오래된 칭호 앙큼한 풍습 영은 비어 있는 쌀통 영은 벌레 먹은 귓불

나는 먹지 않고 살이 쪘다

새로 깐 밤에서 통통한 벌레들이 기어 나오고

 

후일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숲 너머 사람들이 살아

걷고 뛰고 날아도

보폭을 맞춰 나만 따라오는 영

을 아는 사람들이

살아

 

엄마는 편지 뭉치를 빼앗고

내 눈을 씻겼다

자기 전엔 기도하거라

밤나무 숲에 바람이 멈춘 자정

편지지가 흩뿌려졌다

불똥 없이 불이 번졌다

묘지가 불탔다

나는 살점을 얻길 기도했다

 

미래를 읽은 죄가 독해서

먹을 수 없는 내 살만 불어갔다

자다가 거꾸러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거라

오후의 체력장 오래 달리기 할 때에 떠올리는 사람

수학 선생에게 이유 없이 따귀 맞고 위로받는 사람

영과의 만남이 미뤄지고

밤나무 숲엔 깨진 양변기와 처음과 마지막과 타는 냄새와 봉인된 편지봉투가 굴러다닌다

 

내가 스물여섯 살에 버린 편지

발견한 아홉 살의 나

나는 내 나이 사이에 갇혔다

난 단지 남의 살을 원했고

버려진 편지를 영이 줍는 날

 

어느 고백에 따르면

여름을 뛰어넘어 영이 온다

드디어 악몽 속을 걷듯 느리게 온다

나는 천기누설의 죄 값을 치르며 마중 간다

맨발로 밤송이 밟으며 간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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