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스케치

 

불면의 스케치

 

김중일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아름답게 무뎌진 발톱으로 분리 수거된 비닐을 뜯자 구름과 모래가 뒤섞인 저녁이 툭 터져 나왔다. 오래 자란 수염을 태운 혹독한 냄새를 풍기며.

오랜 정전 속에서 매일 우리는 함께 모여 촛불을 불었다. 훅 태양이 한쪽으로 길고 까맣게 누운 사이, 우리 집에는 검은 모자를 뒤집어쓴 이방인처럼 어젯밤이 찾아와 뜬눈으로 묵어가고, 꺼진 줄 알았던 촛불은 되살아났다.

 

촛불과 촛불 사이에 놓인 침대

입술과 입술 사이에 빼문 허연 혀처럼

흘러나와 있는 단 한 조각의 미명

수북한 음모는 우리를 길 위에 그려 넣던 그가

너무나 지루해서 연필을 쥔 채 깜박 졸았던 흔적

 

창문이라는 맨홀 속으로 모래시계 속의 모래처럼, 우리는 산산이 부서져 서로 뒤섞이며 떨어진다. 지붕 위로 촛농처럼 비가 떨어진다. 떨어지던 비가 허공의 줄기를 확 잡아채 피운 나무 잎사귀들. 빗줄기를 잔뜩 거머쥔 가로수 가지마다 차갑게 젖은 말줄임표가 밤새 빼곡히 돋아 있다.

내 머릿속에는 쓰러진 모래시계 하나가 있다. 창문을 등지고 모로 누워 뒤척이고 있으면, 망자가 원탁 위에 뒤집어 놓고 간 모래시계처럼, 그제야 한쪽 귀에서 한쪽 귀로 흘러들어 쌓이는 구름.

 

머리맡에 죽은 향유고래 한 마리가

거대한 느낌표처럼 떠밀려와 있다

늙은 고양이의 무뎌진 발톱이 아름다운 장식처럼

온몸에 박혀 있는 구름 한 마리가

창문까지 떠내려 와 있다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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