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식 외 1편

 

  라식

 

 

 

   오래된 시간이 안개로 태어났어요 초점 잃은 눈동자 위로 물체들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려요 몸을 훑고 가던 떨림이 물방울로 맺히기도 해요 아침저녁 안개의 눈을 꺼내 식염수에 담그지요 이제 충혈된 날들을 걷어내고 한 곳으로 초점을 모으고 싶어요

 

   몇 겹의 안개를 걷어내는 동안 통증에 불안이 겹쳤어요 레이저에서 탈출한 빛이 각막 깊숙이 박혀요 잠을 눕혀도 툰드라의 백야가 펼쳐질까 두려워요 깜깜한 머릿속으로 흔들리는 시선이 길을 내며 지나가요 그곳을 지나야만 환한 태양이 뜬다는데,

 

   얇아진 과거가 급류에 휩쓸릴까 눈알이 둥둥 떠내려갈까 흔들리던 날들, 이제 잘려 나간 각막으로 덮일 거예요 촘촘한 생각의 그물로 시력을 건져내고 통증은 얼음주머니로 지그시 눌러 놓으면, 숨어 있던 슬픔마저 속속들이 보일까요?

 

 

 

 

 

  조문의 방식

 

 

 

   여자의 울음이 나비리본으로 꽂혔습니다

   남자의 슬픔은 두건으로 얹혔습니다

   조문객은 그가 뿌린 씨앗, 항아리에 담긴 한 아름의 조문이

   세상에서 맺은 인연을 기다립니다

 

   의례적인 위로가 켜켜이 쌓입니다

   슬픔의 양과 관계없이

   꽃 한 송이와 봉투 하나로 조문은 완료됩니다

 

   울음이 묻지 않은 국화 위에

   습관처럼 나도 꽃 한 송이 얹었습니다

   가벼운 조문들이 육개장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빛이 환한 문으로 빠져나갑니다

 

   화환을 들고 온 사람은 젖지 않았습니다

   휘발성인 슬픔은 곧 시들겠지요

   지금은 괄호의 시간

   묶인 나비는 꽃을 보고도 날지 못합니다

 

   이 방식은 사나흘간 이어집니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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