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다’라는 말

 

‘스미다’라는 말

장석주

스며라 작약꽃들아, 입맞춤 속으로!
스며라, 모란꽃들아, 여름으로!
늑대에게 곗돈과 밥이 스미면 개가 되고
고라니에게 눈 먼 새끼가 스미면 안개가 되리.
 
기차가 눈썹 같은 환등(幻燈)을 달고 달릴 때
첫 번째 저녁은 두 번째 저녁으로
스미고, 당신과 내가 스밀 수 있다면
우리는 호젓한 호밀밭이 되리.

3월에 때 늦은 폭설이 내리는데,
여름 성경학교가 스며 진눈깨비로 변하네.
당신에게 스미는 것은
오직 나의 할 일,
나는 물옥잠화 같이 웃으리,
봄에서 여름까지.

시궁쥐는 망루를 갖지 못하고
사랑은 뒤집히는 우산보다 견고하지 못하지만 
‘스미다’라는 말은
빨래 마르는 일보다 숭고하네.
어깨 잇자국 때문에 당신은 웃을까, 안 웃을까?
당신이 웃지 않는다면
차마 가여운 당신에게로
내가 먼저 스밀 수밖에 없네.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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