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들

 

터널들

오정국

누구도 그렇게 생각지 않았던, 무작정 흘러내리는
산사태처럼 터널이 밀려온다
예고도 없이

귀가 먹먹하다
언젠가 소낙비를 피했던 곳

쏴아 쏴아 나뭇잎 소리인가 했더니
검게 그을린 목구멍을 보여주는 터널

시커먼 비닐봉지 같았는데, 목줄을 푸니
길바닥에 늘어지는 짐승처럼
퀭한 눈을 껌벅거리는 터널

거기서도
고래와 어부, 돛대가 펄럭거렸다는데,
바람의 아득한 망루를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저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소낙비를 맞고 싶은 터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터널
공중화장실에서 옆 사람의 오줌발을 힐끔거리듯
일광(日光)의 폭포*를 내다보는 터널

터널은
어떻게든 터널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골다공증 때문에 쇠지팡이를 짚게 됐다

복면을 쓴 누군가가 나를 끌고 갔던 곳, 그때는
어딜 내놔도 손색없는 흙이었는데,
꽃이 피다가 멎어버린 듯
캄캄하게 말라붙은

바람의 망루들  《문장웹진 7월호》

* 일광(日光)의 폭포 :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의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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