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反轉)이 없는 오후

 

반전(反轉)이 없는 오후

김정웅

오늘, 우리 동네는
먹구름 아래에서 머물 것이다,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 속 바람들이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미친 듯이
개들이 짖어 대고
교미를 마친 고양이들이
차도로 뛰어든다 며칠 전에는
처녀 혼자 사는 옆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한다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꽉, 입을 다물었던 여자는
밤마다 흐느꼈다
빨랫줄에 걸린 속옷 하나가
툭, 떨어진다
밤새 속옷의 얼룩을 지우던 기억,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지독한 짓을 당하더라도
입을 다물어야만 한다
그러나 개들은 더욱더 짖어 대고
차도를 건넌 고양이들은 이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튼튼한 자물쇠와 방범창으로도
도둑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울음이 새어 나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 우리는
며칠째 비우지 못한 재떨이처럼
더럽혀졌고
잡아 뜯긴 화장실 창문처럼
부서졌다, 속옷을 털어
다시 빨랫줄에 매달아 본다
두 번째란 것은 언제나
덜 고통스럽고 그럴듯하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돼 버려도 상관없을 것만 같은
오후다, 수음을 하다가
창문을 열어 둔 채 잠이 들더라도,
내부가 모두 젖어 버려
완전히 망가지더라도,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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