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하동, 오영희가 열세 살이었을 때

 

1952년 하동, 오영희가 열세 살이었을 때

공광규

강바람이 얼굴에 모래를 흩뿌리던 이른봄
군경과 기관장과 주민과 초중고생의 대열을
맨 앞에서 끌고 가는 사내를 보았어요.
누더기를 걸친 퀭한 눈의 사내는
손이 뒤로 묶인 채 송림으로 향하고 있었지요.
흐트러진 머리칼을 한 예수의 형상이었어요.
사내는 모래언덕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총을 든 군경 백 수십 명이 그를 둘러쌌지요.
군경 한 명이 그의 입에 건빵을 넣어주자
그는 얼른 씹다가 목이 마른지 혀를 내밀더군요.
태양처럼 빨간 혀를 빼고 있는 그에게 군경들은
물 대신에 빵! 하고 총알을 먹였어요.
푹 고꾸라졌던 그가 벌떡 일어서자 군중들은
무서워! 하며 앞사람 등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지요.
조용히 해! 군경들이 군중을 향해 소리쳤죠.
그러는 사이 빵! 빵! 총성이 두 발 더 터졌고
그는 동백과 매화나무 사이에 걸레처럼 구겨졌어요.
은하수가 백 평쯤 섬진강에 내려와서는
물별로 잠깐 반짝거리더니 이내 사라졌답니다.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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