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기도

 

슬픈 기도

이원규

공중화장실 벽에 몰래 쓰고
암실 같은 다방 커피 잔 속의 각설탕을 녹이며
티스푼으로 그 이름을 썼다

최루의 거리에선 온몸 혈서의 깃발로 허공에 쓰고
만리포 백사장과
지리산 실상사 허허 눈밭에선
발자국 발자국들을 이어서 쓰고
지리산 둘레길 850 리를 걷고 걸어
겨우 한 글자 거대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바람이 불 때마다 팽팽한 활이었다 화살이었다

비로소 내 이름을 쓴다
남원 곡성 구례 하동 섬진강변을 달리며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 오지의 잊혀진 비포장 길 위에 내 이름을 쓴다
산길 둑방길에 처박고 나자빠지며
자음 ㄱ자에 발목을, 모음 ㅠ자에 어깨를 다치며

산마을 강마을 2만 리를 걸어도
지구 일곱 바퀴 거리를 질주해도
대체 무슨 불립문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그저 아무런 뜻도 없으려니
나이 쉰을 바라보며 주문처럼 슬픈 기도처럼
전국지도 위에 비뚤비뚤 내 이름을 쓴다
단 세 글자의 길, 다 걸으려면 다시 석삼년은 걸리리라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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