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사전 外 1편

달의 사전

 

김제욱

 

 

 

 

여행은 제목 없는 책들을 데리고 혼자 떠났다.

 

높다란 첨탑까지 책을 쌓으면 수평선 너머를 굽어볼 수 있을까.

궤도에서 이탈한 시간이

바람의 탯줄을 따라 증발하는 것을 보며

더듬더듬 중얼거린다.

너는 책 한 페이지보다 더 가벼워질 거야.

 

굽이치는 길에 쓰러진 책을 일으켜 세우면

사라진 문장 사이 평온한 모래가 아삭거리지.

쓴다는 것은 백지 위에 이빨자국 내는 것이라 생각해.

바람에 물린 살점이 아득하다.

 

상심한 별이 불안을 연주하는 시간,

책장을 덮고 잠이 들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려.

잠결 허리춤에서 자란 나무들이

초록 비명을 터트리지.

내 노래는 슬픈 입모양으로 가파른 언덕을 오르곤 했어.

 

그것은 너였을까.

화관을 쓴 마리오네트.

 

그대가 달빛에 엮인 실을 발견한다면

책과 램프와 책상이 떠올라

구름 저편으로 춤추며 날아가지요.

목소리마저 베일에 가려 도란거린다.

 

여행이 갈림길 표지판에서 사색하기 몇 번,

닿는 시선마다 책장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백지를 지나왔지만

책갈피에 꽂아 둔 심연의 달빛은

뒹구는 구두에 담기기도 하는 것이다.

 

 

 

B♭, 석양, 울음

 

 

단조는 울음과 웃음이 섞여야 매혹적이야.

검은 건반이 퍼덕이며 B♭을 읊조린다.

낙엽의 장송곡을 따라 서쪽으로

노을에 주사바늘을 꽂고 수압을 톡톡 건드리며

자전거가 홀로 감전된 시간을 타오른다.

그대의 긴 머리카락은 늘 폐쇄적이었어.

끝내 섞이지 못했던

말랑말랑한 만남의 처음과 끝은

이제 그렁그렁 떨어지는 목련꽃이야.

붉은 드레스의 끝자락을 하늘거리며

그대의 발목은 폐혈관을 뚫고

황금빛 솔 달린 장막 뒤로 사라졌다.

흔들리는 양초가 피우는 오해는 재미있어.

거짓말처럼 사과조각을 뱉으며 곡예를 하지.

썰물과 밀물이 접힌 마음을 다림질할 수 있게.

노을아 검붉은 피를 쏟아 연주해 주렴.

고양이가 밀도 높은 방울 속으로

소리치는 나팔꽃을 물고 스며든다.

한 하늘, 물먹은 솜, 얼굴이 매운 듯 하품을 하다

검은 우산을 쓴 석양으로 젖어드는

그대의 눈물은 투명한 젤리 같아.  《문장웹진 3월호》

 

 

 

● 詩, 「달의 사전」 육필 원고

詩, 「B♭, 석양, 울음육필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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