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동 外 1편

구성동九城洞

 

이진명

 

 

 

 

구성동은 정지용 시인의 시이다

구성동 시를 좋아하여 책상 위에 수년 붙여 놓고 지낸 적 있다

골짝에는 유성이 묻히고

황혼에 누리가 소란히 싸이기고 하고

꽃도 귀양 살고

절터였더랬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는다는 구성동

산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는

구성동을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금강산 골짜기에 있는 동네라는 것

 

금강산 못 가보고, 가볼 수 없고

그래서 사슴이 일어나는 구성동 더욱 모르고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구성동이 폐허라는 것

길 끊어진 곳이라는 것

사람 그림자라곤 비치지 않는 유계 같은 곳이라는 것

그러니까 캄캄한 곳

절해고도 같은 곳

죽은 줄 알고 눈 감은 채 눈뜬

벼랑 끝

원고마감에 시달리는 이 한 달여

컴퓨터 앞에 앉아 졸며 깨며를 거듭하다 괴로워

마음의 고향 구성동 가고 싶은데

구성동 가 울고 싶은데

벌떡 일어나 구성동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시 끊어진 황폐한 곳

아무도 도우러 오지 않는 곳

체념하듯 컴퓨터 앞에서 떨어져

책상 귀퉁이에 박아 놓은 언제 읽을지 말지 모를

일본어 문고본을 괜히 집어들었다

‘파계와 남색의 불교사’

이런 것이 내 시런가

내 구성동이런가

파계와 남색과

남의 나라 불교사 같은 거나 모여드는

으흐흐 웃기는 천한 나의 구성동

 

 

 

 

두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

 

 

명절 뒤끝 오십대 여자들이 다 저녁에 모였다

하루가 벌써 갔다고

시간이 정말 빠르다고

마음은 이십대와 다를 게 없는데

세월이 빠르고 인생이 짧다고

남은 시간이 적다는 것을 점점 피부로

왜 있잖아, 두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는

더 빨리 없어지는 것 같잖아. 그처럼

더 빨리 없어져 가고 있는 우리 어찌할까

 

둘둘 마구 풀어쓰던 두루마리 휴지가

공중에 귀한 새처럼 오롯이 떠올랐다

동그랗고 하얀 새, 중심이 빈

저 무저항, 저 한 편의 심플함

풀리면 풀려서 마지막 얇고 주름진 몇 장의 흰 깃털

두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는

깃털 연약하고 가슴은 뛰니

둘둘 풀지 말고 한 장씩 끊으며

애련으로 한 장씩 뜯으며

공중에 오롯한 귀한 새

그래도 남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

느리게 흘러내릴 우아한 깃털의 시간이  《문장웹진 3월호》

 

 

 

 

 ● 詩, 「구성동」 육필원고


 ● 詩, 「두루마리 휴지가 조금 남았을 때」 육필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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