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라는 책 外 1편

산수유라는 책

 

이기철

 

 

 

 

산수유에게도 말하고 싶은 입이 있는지

그 노란 언저리에

이야기가 두 권이다

읽어도 읽어도 끝나지 않는

봄나물 같은 이야기가

페이지마다 한 가득이다

햇살 올 때까지만

그늘을 빌려줘도

귓속에는 이야기가 한 밭뙈기다

 

저고리 고름 떨어질라

너무 당기지는 말아라

그 샛노란 저고리 반나절만 빌려 입었으면

닷새장에라도 남보란 듯 다녀오겠다

나보다 먼저 온 병아리도

제 먼저 빌려 입겠다고 종종이는 대낮

오늘은 작파하고

한 솥 가득 속이 노란  

고구마나 삶고 싶은 봄날이다

 

 

 

식탁은 불후의 명작 한 편이다

 

 

식탁 가에는 숨소리 익은 식구들이 있다

식탁에는 식구라는 가장 따뜻한 이름들이 마주앉는다

 

아삭아삭 상추잎을 명편 수필처럼 싸 입에 넣으면

하루가 이슬처럼 맑아지는 식탁 가의 시간

 

살짝 데친 우엉잎은 한 행의 시구다

누가 처음 두근거리며 불렀을

아버지 누나 오빠 아우라는 말들이 밥상 가에 둘러앉는다

식지 않은 된장찌개의 열의는 곁에서 끓는다

 

누구든 식구에게는 손으로 편지를 쓴다

손으로 쓴 편지는 식구를 울게 한다

기뻐서 우는 마음이 식구의 마음이다

 

나무의 나이테같이 동그랗게 둘러앉은 얼굴 송이들

수저도 정갈히 놓아 두는 식탁 가에서

간장종지도 고추장 접시도 악기가 되는 시간이

떨기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직도 춥다면 마음이여

놋숟갈로 아욱국을 떠먹으렴

이 평범한 한 끼 식탁이 식구의 하루를 밝힐 때

 

밥상은 불후의 명편

식탁은 불멸의 명작 한 편이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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