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의자 外 1편

극장 의자

 

박서영

 

 

 

나는 순정한 눈빛을 가진 짐승을 만나러 간다

영화가 끝난 뒤 맨 뒷자리에 구겨져 앉아 있을 때

 

음악은 초조하게 스크린 밖으로 흘러나가고 불은 성급하게 켜졌고

청소부는 너무 빨리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다

 

의자가 짐승처럼 나를 안아 줄 때

외로움은 잔혹하구나, 연인들이 하나 둘 극장을 빠져나간 뒤

맨 뒷자리 누군가에게 손목 잡힌 채 문득 생각한다

 

외로움은 극장 의자에서 시작되어

극장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극장 의자를 떠나는 것이라고

 

텅 빈 극장 의자들은 맹수가 아니라 착한 짐승이구나

어두컴컴한 방에서 무리지어 참 착하게 순하게 살고 있구나

이곳이 내 실존의 장소처럼 불안하고 평화롭다

 

뭉쳐진 먼지덩어리들

자막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청소부는 너무 빨리 상황을 정리한다

이곳이 내 이야기의 시작이면서 끝일지도 모르는데

스크린의 문장들이 도마뱀처럼 뛰어 달아나고 있다

 

 

 

포도밭 국숫집

 

 

포도밭 국숫집 평상에 앉아 국수를 먹네

흰 면발 한 가닥 한 가닥 양푼이 속의 국수

멸치와 김치가 발굴되고 계란과 부추가 발굴되네

반죽이 밀봉이라면 국수 가락들은 풀려나온 죄수들 같네

반죽이 침묵이라면 국수 가락들은 유령의 대화 같네

금방 사라지고 마는 투명한 대화

포도밭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평상에 앉아 국수를 먹네

햇살의 뼈를 끓이니 이리 부드럽고 쫄깃해

밀밭으로 도망친 죄수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네

유령의 대화를 받아 적을 수 있을 것 같네

포도밭을 눌러쓰고 찌그러진 양푼이 속의 국수를 먹네

여름은 짧고 포도알은 아직 익지 않아서 새콤한데

후루룩 먹은 한 다발의 길들이

태양을 묶어 내 앞에 잡아올 수 있을 것 같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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