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음들 외 1편

 

김원경

 

 

묵음들

 

 

 

가슴이 쏠려서 강물이 흐른다

 

눈보라 속에 드러난 검고 연약한 가지 밤의 태중에서 심장을 부풀린 나는 양수의 흐름을 받아 적는다 주름 잡힌 묵음들이 기지개를 켠다 눈밭에서는 볼펜의 끝에도 미세한 골짜기의 무게가 실린다 흐린 윤곽의 바위에서 말이 샌다 어린 소나무의 껍질처럼 검은 뼈가 춤을 춘다

 

窓의 모서리에 갇혀 있던 시간이 종이의 반대편에서 이쪽을 바라본다 주사약처럼 흘러들어온 그림자 좁은 목의 화병 속으로 허물을 벗은 꽃들은 하얀 가운의 햇빛을 가슴에 새긴다 채색도 없이 먹선의 변화만으로 살아온 나는 어둠의 기원과 눈을 마주치는 일에 익숙하다 구름밭에서 자란 묵음들, 오늘따라 잘도 자란다

 

시든 꽃 이파리가 늙은 학처럼 그늘 위에 떠 있다 그늘이 눈보라 속으로 아득해진 바로 그 지점에서 묵음의 발성은 시작된다 그날 이후 나의 주름진 머리카락은 마른 들판의 구름을 그려 넣는다 가지 뻗는 자리마다 갈라진 붓의 연대를 따라 강물이 흐른다 젖은 채로 빈자리에 들어섰다가 거기서 함께 메말라 가는 것

 

묵음은 고요한 어휘의 고행이다

 

 

 

비문의 기억

 

 

 

돌아가야 할 때다

밤이 되니 마지막 비가 재즈처럼 흘러내린다

두꺼운 구름에 가려진 비는

이제 벽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흐린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너의 이름을 써 놓는다

너를 부른다는 것은 온통 비문으로 씌어진

최초의 발성을 기억하는 일이다

너는 이름만으로도 시가 된다

기억의 현을 켜면 너에게 걸어 들어갔던 오래된 스피커에서

침묵의 소리가 난다

소리는 구름의 지문이 되어 공중에서 끓고 있다

구름의 매장이 끝날 때까지

바람으로 채워진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고요할 줄 알았던 슬픔이 낮아지면

스스로 소멸할 수 있는 것도 시간은 용납하지 않았다

기억의 관절은 언제나 바깥부터 어두워졌다

외로움이 뱉어 낸 울음의 결정은  

응달진 너의 등 뒤로

빗물을 가둔 저녁의 입김이 된다

고무공 같은 심장으로 피가 들어갔다 나간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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