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안양 유원지의 오후 외 1편

 

송경동

 

 

겨울, 안양 유원지의 오후

 

 

 

갈 곳이 없어 늦은 오후

남은 해를 맞으러

아이와 관악산 아래 안양 유원지에 나선다

하산하는 사람들이 산에서 우수수 쏟아져 내려온다

아침이 가고 다시 오후가 온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산골짝 계곡엔 아직 빙벽들이 남아 있다

얼음 밑으로 숨었는지 잉어들은 보이지 않고

내 생활처럼 피라미 몇 마리가 보인다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싶다, 파전이 먹고 싶다

얼큰이 갈치조림도 먹고 싶다,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먹고 싶다. 아, 꼬치에 탁주 한 사발만 들이켰으면 좋겠다

 

허기는 서산에 찬 해로 걸리고

왠지 모를 쓸쓸함에 천천히 걷는다

이렇게 늘 늦은 오후였던 생을

아무런 목적도 없이, 느릿느릿

어느 평범한 유원지 계곡변을 걸어갔었다고

나는 기억될까, 무엇으로 기억되어야

나는 행복해질까.

 

군데군데 분양 광고를 단 빈 건물들이 많다

비싼 돈들이 그냥 소일하고 있는 풍경이

스산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그곳들에

누군가의 꿈들이 심어지고 또 호객하는 소리들이

들려오겠지. 실상은 늘 비어 있는 게  

삶인 걸 알면서도, 비어 있는 건물들을 보면

가끔 안쓰럽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지켜보다

놀이터 옆 손두부집 장독대 울타리 공사장을 기웃거린다

손이 하나 부족한 머리끝이 허연 중늙은이 둘이

안간힘으로 철제 울을 짓고 있다. 척 봐도

제 한 몸 일으켜 세워 놓기에도 이젠 버거울 몸들

손으로 발로 일해 본 지가 참 오래되었다

머리로 세상을 만들지 않고

작은 것일망정 내 노동을 바쳐 무엇인가 세상에 유용한

물건을 물질을 만들어 본 지 참 오래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일할 때가 행복했었다

일손이 하나 필요할 때 일손을 보태는 일

일하고 싶다. 정말 일하고 싶다

 

젊어서와 다르게 나이 먹으면

마음만큼 일이 잘되지 않는다

그분들도 그런 것 같다

젊은 내가 봐도 수평이 잘 맞지 않고

수직을 잘 세우지 못한다

손 하나만 더 있어도 될 텐데 싶어

쭈뼛쭈뼛 다가가

도와주니 싫지 않은 내색이다

그렇다고 뭐라 말 붙이기도 싫다

나도 이젠 싫다. 누군가에게 말 붙인다는 것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기울어진 쪽에 받쳐 준

오비끼나 투비끼 하나처럼

저 고목나무 부러진 가지를 받치고 선 녹슨 철 서포터 하나처럼

어딘가 손 하나가 필요한 곳에 내 손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그만, 무엇을 기억할 일도

남길 일도 없다. 말보다 정직한 손

 

손들이 함께 일할 때 그곳에 마음이 손수건처럼

담배 한 개비처럼, 젓가락 한 짝처럼

따라다닌다. 옆 노인이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구로동에서 왔어요, 하고 만다. 한참 후에

다시 노인이 몇 동에 사냐고 묻는다. 3동이에요, 하고 만다.

구로시장 있는 데가? 해서, 그곳은 4동이에요 한다

다시 한참 만에 그럼 114번 종점 있는 데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한다. 자신도 한때 그곳에 살았었다고 한다

1965년이었다고 한다. 그때도 공단이 있었냐고 하니

처음 만들어질 때라고 한다. 그곳에서 일했냐는 말은 물어보지 않는다

구로 3동은 마누라는 없이 살아도

장화는 없이 못 살던 곳이었다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밤이면, 구종점 마루에

장화를 든 마누라들과 아이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삼성 래미안 아파트가 들어와 있지만

얼마 전까지도 닭장집이 있던 곳

 

너트에 맞는 스패너를 못 챙겨 왔나 보다

세 번 끼워 돌리면 두 번은 헛돈다. 그렇게들

우리 모두도 수천 번씩 수만 번씩 헛돌며 살아왔을 것이다.

묻지 않았는데 두 분은 설비들이라고 한다

바닥이나 벽이나 천장에 들어가는 배관일은 전문이지만

지금 이 철제 울을 짜는 것은 자신들도 처음 해본 일이라 한다

지금은 현장일 하기엔 나이가 차 아파트 기계실 일하는데

설비일 마지막은 모두 거기란다

벌이가 안 돼 쉬는 날이면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

 

한참을 맞춰 보아도 수직 수평이 잘 맞지 않는다

수직 수평에 길들여져 버린 나는 반성할 뿐이다

얼추 울이 짜여졌다. 멋지다

장독들이 깊은 잠 좀 자기에는 그만인 공간이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들도 재활용할 겸

닭들도 놓아기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도 한 시간 여를 도왔다

 

그간 혼자 놀던 아이가

아빠 그만 가자 한다

관호야, 멋지지 않니 물으니 뭐하는 곳이야 한다

응, 장독대 놓아둘 곳이야 하며

아빠의 마음 한 자락도 거기 들어가 있음을 자랑하듯 얘기한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하곤 돌아서 온다

산은 못 올랐지만 기분은 좋다

 

슈퍼에 들러 아이는 오래오래라는 비스킷 하나

나는 에이스라는 비스킷 하나를 골라 나온다

서글픈 민중들의 밤이 짙어 간다

나의 밤이 깊어 간다

잉어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물이 많이 말라 있었다

 

 

 

비의 근육

 

 

 

후득후득

내리는 비여

어둡고 검은 하늘의 뒤틀린 근육을 풀고

우두둑 우두둑

대지의 막힌 경혈을 뚫으며

불거진

하얀

뼛가루여

투명한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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