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나라

문정희

 

 

물의 나라

 

물의 나라 주민들은 숨만 쉬기로 한 것 같다

살아 있는 것들이면서도

움켜쥐고 쌓아 올리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물의 나라 주민에게 손과 발은 사라진 전설

입 하나가 욕망의 전부이다

가득히 바다를 채우고 바다를 내뿜는

입이 오직 날렵한 생애이다

유혹하는 낚싯바늘이나

유리 궁전 밖에서 기다리는 숙련된 칼잡이들쯤

비린내 나는 바다의 살점을 씹으려고

입맛을 다시는 날카로운 이빨들쯤은

끝내 루머처럼 몰라도 좋다

물의 나라 주민들은

수궁 깊은 사찰에서 오래 도를 닦은

바다의 미륵들이다

흐르며 흐르며 희희낙락에 당도하는

파도 속의 노래들이다

 

 

 

폭설 도시

 

 

 

폭설이 도시를 점령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되었다

반짝이는 시간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발밑에서 새의 깃털 소리가 났다

하얀 손을 가진 이 통치자는 누구인가

그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건 적도 없지만

역사상 어떤 만장일치로 세운 정부보다 빠르게

눈부신 풍요를 온 도시에 선물했다

 

그러나 이 꿈의 도시는

짧은 생몰 연대를 기록하고

미완의 혁명으로 곧 사라질 거라는

댓글이 인터넷에 나돌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기도 전에

화려한 몽상은 벌써 실체를 드러냈다

 

이 도시의 율법은 백지, 그러므로

누구도 법을 어길 일이 없어 좋았다고

아쉬워하는 젊은이도 있었다

보기 좋게 나자빠져도 법이 없으므로

죄도 벌도 없었다

 

제 길을 제가 만들어 가면 그뿐인

이 설국을 구상한 이는

정치가가 아니라

분명 시인이었을 것이다

 

조급증처럼 자동차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유언비어 사이를 질주하는가 싶더니

하얀 풍요의 도시를 순식간에 파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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