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자 드림

이경교

 

 

옛 제자 드림

 

 

네 편지는…… 옛 제자 드림, 하고 끝났다 이름이 없다, 그건 너무 흔한 보통명사다 글자들이 곤충 알처럼 박혀 있다…… 알들은 무사히 벌레가 되었을까, 그럼 어느 숲을 지나고 있나…… 옛과 지금 사이로는 아직도 강이 흐를까…… 물길이 트이고, 내 기억 어느 모퉁이에 가로등이 켜진다, 강의실, 약국, 책방…… 길 저쪽이 하얘진다…… 편지는 한 세기를 건너온 나비를 닮았다…… 그 순간, 너는 고유명사가 된다…… 암말이 이끄는 구름, 점박이 꼬리…… 아니다, 그건 인디언의 이름이다…… 나는 다시 어둑어둑한 나무가 된다, 가로등이 꺼진다…… 갑자기 눈앞을 스쳐가는 나비가 있다 내가 네 익명 위에 이름을 단다…… 한 세기를 지나온 나비! 하고

 

 

 

내 이름

 

 

자, 이번엔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쓴다, 이름을 뺀다…… 너는 기억이 떨구는 꽃잎들을 아득히 바라볼 테지, 그만두렴, 이름은 차라리 구름기둥, <말은 개다*> 나는 풀꽃, 쇠못, 지렁이다 <나는 그들이다**> 어떠냐? 너는 지워진 이름 너머로 살별이 긋고 간 하늘, 할퀸 자국을 보고 있을까, 아니야, 벌떼처럼 몰려오는 눈발을 떠올릴 테지…… 그럼 그 익명 위에 그것들을 가만히 올려놓으렴…… 살별 자국, 눈발의 벌떼…… 또는 하늘 응달에 핀 무지개…… 그게 내 이름이다

 

이름이 사라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는다, 꽃씨를 터뜨리는 저 풀꽃들…… 내 이름이 사방으로 튄다 이럴 때 은닉은 죄가 아니라 확장이다, 너도 보고 있니?

 

 

* 惠子

** 우파니샤드. I am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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