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소

이근일

 

 

곰소

 

 

곰소엔 곰이 살지 않고, 소금을 이르는 은어(隱語)만 반짝인다 소금밭에 11월 대신, 6월의 빛살이 말갛게 일렁이고 네가 내 심장에 심어 놓은 글라디올러스가 더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제 창공을 찢으며 날아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으므로, 이 없으므로를 적시며 바닷물이 고요히 흘러들고 있다 너는 없고, 차오르고 또 차오르는 너의 음성만 있으므로, 나는 저 있으므로에 앉아 꿀차를 마신다 내 심장 속 달콤한 피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동안 너의 음성은 음성에서 멀어지고 바닷물은 바닷물에서 멀어져 짜디짠 시간이 된다 망중한 그 시간 위로 떠오른 한 척의 폐선이 다시금 밀회 속으로 가라앉는다 잠시 뒤 교향곡이 끊어지면 사방에 흩어진 내 핏방울이 곰소의 하늘가 천만 송이 글라디올러스를 활짝 피우고 글라디올러스가 글라디올러스에서 멀어지는 사이, 나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곰소는 그 반짝임에서 멀어져 오직 캄캄한 어둠만을 흡수하고

 

 

 

스미다

 

 

 

이해 받지 못한 날들에 대하여

세줄달팽이가 이고 가는

세 줄로 된 미로,

그 미로 아닌 미로 속 구불거리는 길을

태양의 증류수가 촉촉이 적시고

(모멸을 끓이고 끓여 만든 그,)

 

푹푹 찌는 여름의 열기 속

궁글리고 궁글리다 더는 그 무엇도

궁글릴 수 없게 된 날들에 갇혀

흐느끼는 너의 그림자

나는 부드러이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그러자 멜로디 안

돌돌돌돌 저 시간의 밑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나선계단;

               춤추는 그 나선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세줄달팽이를 바라보는 사이,

별안간 눈이 펑펑 쏟아지고

(하지만 여전히 폭염에 찌든 바깥에서

흐느끼는 너여,)

 

‘이해할 수 없는 날들에 대하여

미친 듯이

         눈보라 치다가……

아 잠잠히 너의

울음에 스미고 싶어라’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