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이 

 

 

 

 

 

한글도 다 못 읽는 여덟 살 아이는 붉은 노을이 어둠에 끌려갈 때 산자락 끝을 따라 언덕을 넘고 밭둑을 걸어 또 다른 언덕에 오른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담도 없는 함석지붕 집 소리도 가라앉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두려움에 덜컥 심장이 벌렁거리고, 시커먼 문이 성큼성큼 달려든다 마치 쑤욱 빨려들 것 같은 검은 구멍, 엄마 따라 가끔 놀러 갔던 그 집 부엌이라고 알면서도 쿵쿵거리는 가슴은 어쩌지 못하고 풀숲에서 발목을 잡아당기는 착각마저 든다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홀 같은, 아버지를 미워하던 일 남자 행세했던 일 공부 못하는 주인집 아들을 때린 일, 꾹꾹 감춰져 있던 죄의식들이 뛰쳐나오는 듯 몸뚱이 덜덜거린다 땅거미가 나를 거두어 깊숙해지자 최초의 그 문은 어둠 속으로 점차 사라진다 잊어버린 듯 그 어둠 속에 묻어 놓고 있었다 하필이면 지금, 내 앞에 그 문이 다시 나타났다 그날 옴짝달싹 못하고 굳어 버린 채 심부름으로 들고 갔던 저울, 저울을 찾으러 난 다시 그날 언덕 위로 올라간다 홀린 듯 끌린 듯, 여덟 살 아이는 없고 더 어린 아이가 그 자리에 서 있다 문,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초점 없는 하얀 눈이 있다

 

 

 

쉼표를 못 찍는 이유

 

 

 

낯선 여인숙

성큼 마음을 들여놓고 서성거리다

가만히 벽을 쓸어내리니

삶의 집착들이 울툭불툭 거칠게 숨을 쉰다

잠시 내버려두고 온 저곳에서

질기게 따라와 낯선 나를 못마땅해 한다

엄살도 허락하지 않은

이 시간

 

방 너머 방의 기척에 아랫도리가 간질거린다

서른일곱 살 파닥거리는 성감에 안도하다

문득 지금껏 내 몸뚱이는 환희에 찬 소리를 질러 봤던가

무심코 중얼거리다가 눈물 나게 웃는다

시큼한 이불 냄새는 내 구린내 같다

잔뜩 부려 놓고 온 미움까지 그리워진다

사실 멀리 떠나온 것도 아닌데

잠깐 벗어난 이곳 또한 현실이었으니

쌓이고 쌓여 커져 가는 욕망의 뒷구멍

징그럽게 끌어당긴다

 

서방도 새끼도 없으면서

덜 벌고 덜 쓰고 덜 먹어도

끝내, 자유롭지 못하네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