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유용주



슬픔




지리산 종주를 하다 만난 안종관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중호형, 채 쉰을 못 채우고 돌아가신 중호형 부인 홍경화 형수가 마포 합정동 부근에다 식당을 냈다고, 한 번 갈아 주러 가자고 한다 비빔밥 전문점, 그간의 사정을 알고도 남겠다 언제 서울 올라가면 한 번 가 보자, 소주 서너 잔에 볼고족족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합정동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중호형 편집 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처가에 가서 공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사정을 말하고 밥 먹으러 갔다 화평동 냉면집에서 돼지갈비와 왕냉면을 먹었다 불현듯 아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장모님께 자랑했다 부부의 날 기념으로 이이가 선물한 것이라고……, 모두들 부러워하는 눈치다 사실, 그 반지는 친구가 술김에 사서 선물한 것이었다 아내의 자존심을 생각하자, 육수처럼 서러웠다


외국인 결혼 이주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지 두어 달이 됐다 하루는 집으로 전화가 왔다 서투른 한국말이었다 선생님, 저, 무까리에요 저, 화원을 열었어요 꽃집이라는 말은 아주 멀리에 있었다 무까리 친정어머니가 이역만리 고향에 있듯, 부영아파트 앞, 부영화원이에요 개업인데, 전화할 곳이 선생님밖에 없어서……, 뒷산 숲 속에서 소쩍새가 섧게 울었다 나는 결국 개업식에 가지 못했다 먼 남쪽 바닷가 대안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데리러 가려던 참이었다 무까리……, 부영화원……, 그리고 봄꽃 죄 피었다 지는 오월




모국어




루자리 통숙, 허우칭핑, 산토스 재클린 멘도자, 우빠촌 붓파, 와규 다가고, 메라솔비, 이찌노 세리쯔꼬, 에리니, 니따야, 팜티방, 우엔티 바오찬, 누스라 추엔스리, 수드라 웃통, 찬디아, 천양련, 이다희, 손소희, 호레이롱, ……, 모아 놓고 한글을 가르친다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


아기

진달래

아내

개나리


아, 버, 지, 어, 머, 니,

아아, 어, 머, 니,


갑자기 뒷자리에서 누가

흑, 하고 고개를 꺾는다


봄비 내리고

새는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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