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말

 

주영국



봄의 말




봄날의 공복에 점 하나를 찍고

시립 도서관 벤치에 앉아

계단처럼 밀려오는 졸음의 꼭지를

꽃 이름으로 바꾸어 하나, 둘 세는 동안

진달래 산수유 금낭화 제비꽃……

봄꽃 벙근다, 봄꽃 핀다


아들아, 너는

나 같은 꽃대로 살지 마라

뿌리의 근력을 쓰지 않고도

계절 바뀌어 뿌리에 물 닿으면

절로 꽃 필거라 믿었던

불임(不姙)의 꽃대로 살지 마라


뿌리의 근력으로 힘껏,

봄물 끌어올리며

네 이름의 봄꽃 환하게 피워내라.




사막에서 길을 묻다




사막에 달이 뜬다, 혜초의 경을 따라

서역으로 천축국전 져 나르는

쌍봉낙타 물혹의 능선을 타고

마른 빵처럼 달이 부풀어 오른다


생의 팔 할이 바람이라 믿지 않아도

등압선 길을 따라 사막에는 모래바람 불고

서 있는 것들은 모두 풍장을 당해

횡으로 스러진 지 오래,

물수제비 뜰 조약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눈을 비비며 길을 묻는 나에게 쌍봉은

막히면 돌아가라 한다, 흘려보낸

시간 새김질하며 어디로든 돌아, 가라고 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말은 이제

바람 없는 곳에나 쓰일 말이다


빈집의 물소리를 피해 이역의 길 밖으로

떠밀려온 사람들과 생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며, 몇 시간을 절로 벌었다며

마른 담배 나눠 피우고 있을 때,

달빛 아래 푸른 도마뱀이 이게 시간을 번

너희들의 죄 값이라며 제 꼬리를 잘라 주고 갔다


내게도 쌍봉의 물혹 돋으려는지

자꾸만 등이 가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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