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왕국

 

신은영



잠자리 왕국




초여름 아침, 하늘의 쪽빛도 첫물일 때, 검지 손가락만한 잠자리들이 눈높이 가까이 날며 짝짓기를 한다 온몸으로 윙윙거리며 바짝 날아오르는 잠자리를 피하느라 오히려 고개를 숙인다 둘이라는 것, 잠자리 눈동자의 회오리에 휩쓸리듯 네 영혼에 몰두하는 것 그러나 너의 육체를 받친 채 허공 위를 뚫고 오르는 외로움은 파란 하늘에 부시다


잠자리 왕국으로 떠난 당신 하늘의 공백 저편에 열린 문을 열고 잠자리 고개 돌아가듯 딸각딸각 멀어지며 돌아보지도 않고, 말랑거리는 그대 앞가슴을 밟고 낯선 걸음으로 따라가 보아도 애써 손사래 치며 밀어내는 오솔길, 자꾸만 멀어지는 한 줄기 햇빛 따라 잠들다 깨면 불길하게도 새까만 물잠자리 되어서 문득 팔랑거리는


당신의 살갗 파랗게 멍든 자리에 갇히려고 짐짓 벙글거리며 누워 끔벅끔벅 높은 하늘 바라보다가도 파르르 날아오를 때 풀잎의 스침,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원을 그리며 하늘 끝으로 날아가는 잠자리 나는 바람의 계단을 휘청이며 올라가네


두 마리가 붙어 파닥거리며 낮게 날아도 여린 날개 낚아챌 수 없는 잠자리 왕국, 섬이 되어 부신 하늘의 끝자락을 말아 올리며 긴 잠이 든다




낙서 




나의 사내는 연필을 사각거리며 내게 왔네 무언가에 집중하면 입을 헤, 벌리고 있어 마당이 예쁜 집을 들여다보고 슬며시 돌아서듯 다물어 주던 입, 연필을 사각거리며 키득키득 밑줄을 쫙쫙 긋고는 당신을 향해 동그라미 동그라미 하나 두울 세엣 네엣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돌아서 돌아서 땅을 짚어라 짚어서 짚어서 만세를 불러라


메아리 그리며 자꾸만 잡히지 않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텅 빈 숲의 동그라미 응시하며 그대, 내가 그린 원에 갇히기를 내 안에서 바닥을 짚고 흰 죽 넘기며 열병도 앓고 하늘을 향해 만세 만세 부르며 자라기를 나는 훌쩍 커 버린 당신의 어깨를 뒤에서 안고 부끄럼 많은 당신을 향해 안녕하세요 눈물 나도록 키득거리다 소나무에 맺힌 이슬도 또옥또옥 떨어지며 아침을 향해 채비할 때 언제나처럼 나도 당신 따라 슬그머니 일어서서 차마 고개 돌리며 잘 가거라 안녕히


어릴 적 치마를 말아 올린 채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땀방울 매달린 너의 콧잔등 바라보며 가만히 공깃돌 던지듯 뚜벅뚜벅 멀어져 가는 우리의 시간을 향해 손 흔드네 신방을 가리우는 혼례의 저녁처럼 종아리를 슬쩍슬쩍 스치는 치맛자락 살랑이고 내 숨은 장딴지 속에서는 꽃들이 자꾸만 떨어져 사각사각 아직도 그대 뒷모습만 어지럽게 따라가는데…….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뒤를 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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