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호사(豪奢)

 

고 영



슬픈 호사(豪奢)




홍수에 휩쓸려 온 1톤 타이탄 한 대가 다리 난간에 걸쳐 있다.

일방통행 강물에 전복된 저 트럭,

주인만 황급히 피신 시킨 채로, 문짝이 떨어진 채로, 쓰레기더미를 뒤집어쓴 채로,

속력을 잃은 바퀴가 속절없이 급류의 속력을 견디고 있다.

바퀴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면 한낱 고철덩어리로 보였을 저 트럭,

 

수많은 이삿짐과 건축 자재들을 싣고도 위풍당당하게 도로 위를 질주하던 저 트럭,

참으로 황당했겠다, 어안이 벙벙했겠다. 

적재정량보다 몇 배나 많은 짐을 싣고도 군말 한 번 없이, 묵묵히,

오직 제 몸뚱어리에 의지해 겨우 건사하던 운명이, 타고난 시지프스의 빌어먹을 운명이 

별안간, 정말 본의 아니게

강물의 등에 실려

난생처음 무동을 타는 호사를 누렸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저 만신창이 트럭처럼, 

굴러야 할 바퀴도 다 터지고, 속도도 잃고, 번호판마저 뜯겨 나간 저 트럭처럼,

어리둥절 황홀경에 빠져 있을 때가 있다.


뒤바뀐 처지가, 운명이 어색했는지 아님 질주의 본능이 꿈틀거렸는지 저 타이탄 트럭,

다리 난간에 걸려서도 전조등이 강 상류를 향해 있다.


깨진 전조등 틈새로 젖은 햇빛이 웅크리고 있다.

   



북청전당포 




남항동 삼거리 코너 일본식 건물 삼층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외로운 감옥이 있다

집 밖을 떠돌던 가난한 그림자들이

밤안개처럼 몰래 찾아드는

그 감옥에 가면

까만 뿔테 안경을 쓴 눈초리 매운 영감이 산다

누구는 화교라고 하고

누구는 실향민이라고도 하고

동네 꼬마들은 간첩일지도 모른다고 슬슬 피해 다니던

그 영감을

언젠가 통기타를 들고 면회한 적이 있다

함경도 사투리로 주절거리는 목조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기타 속에 살던 아름다운 엘리제가 슬피 울었지만

어차피 청춘은 장물 같은 것,

밥을 위해 반지를 팔고

사랑을 위해 몸을 팔고

혁명을 위해 혁명을 팔았을

앞서 간 어느 면회객의 초조하고 숭고한 발자국 앞에서

마치 처분을 기다리는 장물처럼 오금이 저렸다

건물 밖 화단에는 벚꽃이 피고

미안한 마음 덮어씌우듯 목련은 서둘러 지고

인생의 절반을 가슴팍 깊은 골짜기에 묻고도 모자라

스스로 그리움의 감옥에 갇혀 사는

그 영감 눈빛 앞에서

나는 이를 악물고 부끄러운 청춘을 곱씹어 삼켰다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