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피리

 

맹문재



마술 피리




문방구에 붓을 사러 갔다

강원도 태백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진폐 재해자들의

이름이며 울분이며 외침을

먹을 묻혀 붓으로 꾹꾹 눌러쓰면서

고통을 가져 보려는 생각이었다


문방구 주인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좋은 일을 한다며 피리 하나를 건넸다

답답한 마음에는 피리를 부는 것이 제일 좋다고

요즘에 나온 것은 기능이 아주 뛰어나

연주 기술도 필요 없고

내고 싶은 소리를 크게 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인의 말을 선뜻 믿을 수 없었지만

호의가 고마워 얼른 값을 치르고

라라라, 집으로 왔다


나는 붓글씨 쓰는 것은 미뤄 두고

즉시 피리를 꺼내

나의 울분이며 응원이며 희망 사항을 불어댔는데

삑삑거릴 뿐이었다

이리저리 피리를 돌리면서 다시 불었지만

여전히 깨지는 소리가 났다

설마 문방구 주인이 속였을까, 나는 여전히

불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의 얼굴은 점점 시뻘개졌고

입안은 뻣뻣해졌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땀도 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마술 피리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정선아리랑




비 내리는 마흔 살 새벽 출근길

나는 그 노래가 할머니의 유일한 지팡이였다는 사실에

비에 젖지 않았다


나는 그 뒤 비가 올 때마다 당신의 노래를 들었다

나의 버릇은 나이테처럼 넓어져

방을 구하러 다니는 골목에서도

갓난아이를 재우는 동안에도

시외버스를 타고 설 쇠러 가는 길에서도

심지어 대출 이자를 메고 귀가하는 한밤중에도 들었다


당신의 노래가 나의 유일한 비책은 아니었지만

나를 함부로 용서하지 않는

지팡이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장마가 져도 나의 길은 떠내려가지 않았고

폭설이 내려도 나의 길은 끊이지 않았다

불합격 통지서를 받아도 나의 길은 멍들지 않았고

대출 이자에 쫓겨도 나의 길은 죄인이 되지 않았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그 새벽 출근길에서 들은 할머니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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