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수
검정고무신
초등학교 친구가 보냈다
까만 사진 속 비뚤게 쓴 동기생 넷의 모자에는
교표(校標)가 없었다 물 잘 빠지던 무명지 검정색 교복엔
단추 한 두 개씩 보이지 않았다 한결같이
기차표 통고무신, 검정고무신을 신고
긴긴 오십 년을 그렇게 서 있었다
읍내 국민학교 웅덩이에 가물치가 살았다
물 위로 드리운 버드나무 긴 머릿결보다
더 굵은 소나기 흩뿌리던 운동장의 저녁 무렵
곧잘 튀어 오르던 너무 커 까만 가물치 한 마리
조심조심 밀어 넣었다 검정고무신
교실 빈 터 시멘트 허방 고인 물 퍼내
살찐 붕어들을 잡기도 했다 거름 가득 채운
똥장군을 긴 막대기에 꿴 채
마디호박밭, 비탈 져 미끄럽던 학교 실습지 길
그 위태위태한 발걸음도
친구여, 삐비를 뽑아 씹던 무덤가엘
지금도 가는가 풀섶 이슬 질퍽대던 검정고무신
포동포동 탐스런 찔레 새순과
빨간 뱀딸기, 잠시 소스라쳤다 똬리 튼
그까짓 꽃뱀쯤 별 것 아니었던 저녁상(床)은 보나마나
멀건 풀죽 한 그릇, 쑥털털이, 강냉이죽, 생 우유가루
배고파 깨어난 새벽마다 환장하던
깜깜한 어둠 속 그 댓돌에도
친구가 보낸 까만 사진 속에
낙인처럼 콱 찍혀 있던 기차표 통고무신
검정고무신이 있다 눈물겹게 지탱했던 어린 날
까만 기억되어
오오, 까만 기억되어 묻힌 세월을
우리들 폴짝폴짝 뛰어 건너던 검정고무신.
시계
아버지 힘겹게 팔을 올리셨다 시계는
깡마른 팔목 지나 팔꿈치에 걸렸다 시계는
그놈 올 때인데 올 때인데 시계는
아버지, 깊은 잠 속으로 데려가 버렸다 시계는
지금 우리들 손목에 살아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보았는가
낮술에 취한 이웃 도회에 내리던 저녁놀
또 다른 이웃 도회의 단칸셋방에도 내리던 어둑살
그리고 먼 고향집은 짙은 어둠 뿐
황망(慌忙)하여라 아버지 바삐 가신 작은 집
짙은 밤을 흔들던 더 작은 조등(弔燈) 하나
조등 하나, 아직도 또렷하다
한동안 그 도회, 그 낮술 속에 빠져 있었다 시계는
아직도 그 도회, 그 낮술 속에 빠져 있다 시계는
손목에서 쉴 새 없이 재깍대며
우리들 생애를 질기게 보듬고 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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