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김경인



툭,

 

                           


문득,

저물녘 태양이

성큼 자란 꼬리를 물끄러미 돌아다보고

겨울 내내 상자를 들락거리던 도마뱀 여자가

별자리 점괘 속으로 낯설고 지루한 여행을 떠날 때 

의심 많은 새떼의 부리는 날로 뾰족해져

빛나는 열쇠를 잔뜩 감춘 아침을 쪼아대고

때마침 바람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에서

이라크에서 인디아에서 동시에 불어오고

언니, 나는 부끄러워요. 다국적 기업에 취직하다니

울먹이던 

십년 전 차에 치어 죽은 후배는 문득 옛날 일터로 돌아와 

맥도날드 유리창을 닦다 반사된 제 얼굴을 못 알아보고 

허물을 벗어버린 그림자가 모두 사라질 준비를 마칠 때

봄은 묵묵부답 깊어가고  

가지마다 주렁주렁

꽃들은 

툭,                              



두 개의 입술



                 

나는 분명하다.

단숨에 터지는 웃음처럼.


나비는 투명한 허물을 벗고 있어요 나는 흐리멍덩하고 뚱뚱해요 뿌리를 향해 곤두박질치는 나뭇잎 겨울 내내 속살을 파먹고 터질듯이 부풀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누에 기다려줘요 나를 송두리째 뱉어낼 때까지


나는 투명하지 않다.

잘 포개져 있다. 

나머지는 당신의 세계이고 나는 그것이 즐겁다.


진실이란 다 지나간 일이라고 누군가는 그래요 매번 마지막 편지를 써요 이름을 자주 바꾸는 사람 날마다 늘어나는 혓바닥으로 써요 똑같고 끝이 없다고 했죠 소용없는 일이에요 지겨워 지겨워서 시계를 버린 사람 늘어질 대로 늘어져 아무데서나 툭 떨어지는 사람 처음을 속삭여볼까 보여줄까 모의를 해볼까 움켜쥔 두 손을 펴보겠어요 새나가는 목소리를 막으려 뭉게뭉게 뒤엉킨 구름처럼


나는 구름에 대해 상상하지 않겠다.

입을 버린 돌멩이처럼.


아무것도 변한 건 없고 언제부터인가 환해요 나를 검은 아이로 내버려둬요 사방이 환해지면 나도 환해질 텐데 나는 또 얼마나 묻고 또 물을까요 눈 코 입을 처음 만지는 어리둥절한 아이처럼 얼마나 집요해질까요 가죽인형들은 모두 늙고 악몽은 절대로 썩지 않아요 이상하지 않니 우습지 않니 아직도 나는 정면을 모르는데 얼마나 우스울까요 우리가 서로를 바라본다면 얼마나 창피할까요 나는 아직 뚱뚱해요 새벽녘마다 내가 쿵쿵 걷는 소리가 당신의 잠을 들썩이는데 나는 아직


나는 가까스로 닫혀 있다.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곧 흩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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