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사내들,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딸

 

김민정



할머니, 사내들,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딸

-피터 그리너웨이 풍으로




할머니가 죽자 그녀의 사내들이 되살아났고 게서부터 우리들의 가계는 시작이라 했다 유언은 단 한 마디, 굿! 하셨다는데 그래서 좋단 말씀이시우, 아님 살짝 비명이실까


할머니가 죽자 되살아난 그녀의 사내들은 시루 속 콩나물처럼 길쭉길쭉 자라났고 이거야말로 우리 모두의 로망 아니겠니 이 많은 아버지들 속에 내 아버지 골라잡기 말이다, 매일 밤 그녀는 물 찬 조루로 똥 찬 시루를 적시느라 여념이 없었거늘


소녀는, 재주라곤 손톱이나 물어뜯을 줄 아는 소녀는, 이도 저도 시큰둥이라 머리가 덜 찬 아버지의 대가리를 따거나 뿌리가 시들한 아버지의 아랫도리를 짓이기는 데서 그녀를 이해한다 하였지만 어머니, 몸통만 남은 콩나물은 아귀찜 속에서나 환영받을 일 아닌가요


할머니가 죽자 너무 자란 그녀의 사내들은 목 둘 데 없어 창밖으로 뒷짐이나 졌고 나귀 타고 장에 가신 아버지는 돌아오실 때마다 어찌 그리 무성할까 어느 집 구들을 차고 어느 집 밥상 위에 올라앉았는지 그녀는 알 바 없다 하였지만 어머니, 4점짜리 한문 주관식 문제로 呼父呼兄은 꼭 나온다고 했다니까요


소녀는, 연필 대신 다트 핀을 쥔 소녀는, 할 일 없어 하릴없이 다트 판이나 겨냥하고 그건 필통 속을 뚫고 나가려는 연필심의 기지개 같은 타고남이라 화살은 쏙, 쏙, 퍼펙트 텐으로만 소리 없이 적중하고 소리 나게 요란한 코치의 바람대로 소녀는 처녀 출전한 올림픽 양궁에서 금메달을 따느라 여념이 없었거늘


할머니가 죽자 어떻게든 죽지 않는 그녀 앞에서 소녀는 금메달이라 하고 이게 진짜냐 가짜냐 깨물러 온 아버지는 금니 네 개가 네 아비려니 유산이라시는데 콩나물이나 잡술 것이지 똥꼬 속에서 자꾸 콩나물이나 뽑으시는 어머니, 돌돌히 구겨지는 원으로 인제는 돌아와 제 관 앞에서 녹고 있는 저 눈사람은 대체 누구이간데요


할머니가 죽자 그녀의 살은 부풀어 올랐고 게서부터 우리들의 식탁은 시작이라 했다 누가 깔아두었나 새하얀 광목천 위에 누운 그녀는 영양만점 두부로 따끈따끈하기만 한데 살뜰한 어머니의 야무진 칼솜씨로 오늘도 우린 비만이란다




정현종탁구교실




정현종 시집 읽기를 숙제로 내주고 정현종 시집을 잃어버린 내가 수업 직전 네이버 검색창에다 정현종, 하고 이름 석 자를 쳐본 것은 2006년 5월의 어느 날, 키 169cm 체중 64kg이라는 자료는 대체 누가 올린 걸까 싶으면서도 나는 내 키에다 1cm 내 체중에다 7kg을 더한 시인의 그림자를 가늠하는 재미로다 어디에나 쩍쩍 잘도 붙는 밀가루 반죽을 손에 쥐고 시로구나 시인입네 주무르게 되었는데 그때 막 굴러오는 희뿌연 공 하나를 보았는데 오는가 싶게 굴러가는 희뿌연 공 하나를 찾다 나는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1096-1 정현종탁구교실 문을 두드려 라켓도 하나 빌리게 되었는데 그건 탁구공이 아니라 하고 그건 CF의 한 장면처럼 튀어 오르는 우윳방울도 아니라 하고 그럼 뭐냐는 질문에 그건 매끈한 탄력 기막힌 탄성 같은 거라니 서브 좋은 서버들의 집중타를 나는 기분 좋게 맞아야만 했는데 진부한 나의 라켓이여 안녕, 식상한 나의 바스켓도 굿 바이, 해서 나는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910-6 또오리반점 주방에서 내다버린 양파망으로다 공아, 아나 줄게 공아, 공이나 쫓기 바빴는데 때린들 어떠하리 맞은들 어떠하리 탁구공이 아닌 것이 우윳방울도 아닌 것이 무차별적인 스매싱을 감행하자 계속되는 랠리 속에 내 양파망은 밑이 터진 것이냐 뻥, 뻥, 뻥이오! 텅 빈 양파망에서 튀겨져 나오는 뻥튀기나 먹는 나는 뻥튀기 낀 잇속이나 쑤시면서 다만 골똘해지는데 손에 꼭 쥔 이것은 떨어져도 튀는 공이니 김민정철학관이나 김민정머리방처럼 잡스러운 내 간판은 머잖아 또 깨어질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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