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림다방

 

김정환



학림다방



그곳 사장은 사진작가고 그것 아니라도

그곳에 가면 나는 오래된 사진 속에 있는

같고 `오래된` `이미` 사이가 그렇게

멀리 떨어진 지 또한 오래된 같다. 낭독의

발견이라는 TV 심야프로가 있었다. 낭독은

이미 오래전에 발견되지만 무대는

진행자가 너무 예쁘고 조명이 너무 화려해서

실연의 베토벤 만년 현악4중주

아다지오로로도 창밖에

비가 내리는 듯한

느낌이 없었다비 내리는 옛날 영화

필름 얘기가

`아니지. ` 카메라 앵글 전체를 차지했지만

빈 자리가 있을 같은

느낌이 없었다. 고독 얘기도

아니다. 앞서 자와 뒤에 자의

음악의 혈연 얘기다. 오래된 음악가의 오래된

4B 연필 초상들은 미래를, 탄노이 스피커는

과거를 향해 진지하고 정답다.


그렇군.

밖으로

옛 문리대 교정에 간신히 살아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건물도 고색과 공무를 벗는

학림다방은 4B 연필이군.


광란의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는 사실이

정말 사실일까. 모든 것이 당연하고

당연한 것은 점잖고, 점잖은 것은

편안하다. 이곳에서 시작된

첫사랑의 서툰 단내는 사실일까. 이곳에서

가장 어색한 말은 시작이다. 그것은

목조계단이 삐그덕거린다는 문장과

같은 뜻이다. 계단을 오르며 우리는 백 년

당인리 발전소를 짓던 시절의 등을 밟고

모든 것이 무사한

세계로 들어선다.

무사한 것이 정말 다행이야

죽은 자도 자도 실연의 자살도

자기 자리에 앉아

정말 다행인 추억의

안식과 안식의

미래 속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파란만장은 없다 파란만장의

목적지가 이미 있을 뿐이다.


6.25 이전에도 학림다방은

그랬을 같은 느낌이다.


1975 유신헌법의 와중

문리대는 관악산 서울대학교

허허벌판으로 옮겼고 반체제

시위는 박정희 의도와 달리

황량해졌을 줄지 않았다.

학림다방은 남았다.


같은 느낌이다.

여러 차례 주인이 장르별로 바뀌다가

사진작가가 맡은 10년이 넘는다.

잘 된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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