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족암에서

 

표성배



상족암에서

                    



내 여행은 바위 위에 새겨진 발자국에

가만히 귀를 대어 보는 것에서 출발했다


너무나 가깝다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

가만히 눈을 감으면 수평선 위에 펼쳐지는

아득한 풍경,

다가올 슬픔 따위 상관도 없다는 듯

바다는 너무나 잔잔하다

발자국 몇 개 유산처럼 남겨놓고

아침이 오기 전에 사라져간

아득한 조상,


훗날 내 발자국에 귀를 대고는

여행을 떠나는 이가 있어

마지막 몸부림에 지쳐 가는

내가 보일까

오지 않는 아침을 기다리는 밤 내내

두려워 웅크린 내 모습이,

그는 나를 닮기나 했을까


내 여행의 끝은 보이지 않는데

한 무리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공룡발자국 화석에 서둘러 귀를 대어보고 있다

파도 소리가 높다



* 상족암 :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지




사자평에서

                     



바람에게 길을 내어 주고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저 억새 군단,

그 옛날 파르티잔처럼 처절해 보인다


누구나 사자평에 와 보면

소리도 없이 다가와 암호를 외치는

어린 병사를 만나

한 시절에 관한 전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조심하시라

당신이 한 참 넋 놓고 있는 동안

당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 당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랄 것이다


행여 먹구름 떼가

당신의 머리 위에 머물다 떠난다면

또, 조심하시라

눈앞에 어린 병사는 온데간데없고

저문 하늘이 붉게 물들어

좀 쓸쓸해지더라도 그리 외로워 할 일이 아니다


마음 한 쪽을 억새 군단에 빼앗기고

마을로 내려와

저녁 밥상 앞에서 기억을 더듬어도

어린 병사를 만난 기억이 없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사자평에 왔으면서도

억새밭에 한 발 쉽게 들이지 못한 채

완전무장을 해제 당한

가을을 만나고 온 것이다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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