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장석주



축구




어린 시절 공을 차며 내가 

중력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걸 알았다.

사는 동안 배워야 할 도덕과 의무가

정강이뼈와 대퇴골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변동과 불연속을 지배하려는 발의 역사가

그렇게 길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초록 잔디 위로 둥근 달이 내려온다.

달의 항로를 좇는 추적자들은

고양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 우연의 궤적을

탐색하고, 매복하고, 노려본다.

항상 중요한 순간을 쥐고 있는 것은

우연의 신(神)이다. 기회들은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왔다가 거머쥐기 전에

이내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나는 굼뜬 동작으로 허둥대다가

헛발질한다. 헛발질 : 수태가 되지 않은 상상임신.

내 발은 공중으로 뜨고

공은 떼구르르르 굴러간다.


마침내 종료 휘슬이 길게 울린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연금술사들은

스물 두 개의 그림자를 잔디밭 위에 새긴 채 걸어 나온다.

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달을 좇는 이것은 살육과 잔혹 행위가 없는 전쟁,

땀방울과 질주, 우연들의 날뜀,

궁극의 평화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이 




강 중심을 향해 돌을 던진다.

장마가 끝나고

단풍 된서리 눈보라가 차례로 지나갔다.

다시 백로(白露)와 상강(霜降) 사이

그 돌은

하강 중이다.


방금 자리 뜬 새와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 

생(生)과 몰(沒)

사이 


밥과 술에 기대 사는 자가

담벽에 오줌을 눈다.

그 아래 작약과 비비추, 호미자루와 죽은 쥐,

구접스러운 것들 다 황홀하다.

구융젖 빨고 구핏한 길 돌아

예까지 왔으니,

더러는 쏠쏠하게 이문이 남지 않았던가.


돌아,

돌아,


돌은 제 운명의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 

사이

그 고요의 깊이를 측량하며

하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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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rain

오랜만에 만난것 같습니다….이런 스타일의 시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