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피고 지는

 

배창환



봉숭아 피고 지는   

 



팔순 이모가 입을 닫으셨다. 환갑 자식 앞세워 보내고 반쪽이 된 노구가 사흘 낮밤을 물 한 모금 털어넣지 않으셨다. 하객들 떠나 고요한 삼경, 영안실 마루 끝에 던져 놓은 물걸레처럼 아무렇게나 기대 앉아 허물어졌다. 엉킨 머리칼 사이로 꺼질 듯 새나오는 눈빛 한 오라기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처럼 한 일 자로 꽉! 깨문 메마른 입술에만 숨이 파르르 붙어 있었다. 

 

지난 여름, 뒷집 텃밭 둘레에서 우리 집 길가로 파 옮겨 온 봉숭아가, 근 열흘 사선(死線)을 넘나들고 있었다. 대낮엔 불볕에 익은 잎가지를 절절 끓는 땅바닥에 처박았다가, 밤 되면 찬이슬 받아 시나브로 들어올리고, 올리고…… 나는 아침저녁으로 그 정수리에 물벼락 퍼부어 가물가물 놓아가는 의식을 팽팽 당겨주곤 했다.


상한 관절 마디마디 피가 돌자, 땅을 박차고 우뚝 서서 붉은 혀 같은 꽃잎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꽃그늘 사이 탐스런 입들이 조롱조롱 매달리면서 다시금 불볕이 그를 달궜다. 이모의 입이 터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아픈 다리 끌고 다니러 가신 날,

-밥 많이 무라, 내 새끼들……

말문이 터지자 애 터지게 기다리던 가슴들이 탁탁 터졌다. 내 봉숭아도 입을 활짝 열어 사방팔방으로 새끼들을 튕겨 보냈다.     




시인의 아버지


           
 

시골 마실에서 김고* 합격하고 국립 사대 들어가

개골창에 용 났다고 온 동리를 들썩이게 했던

바로 그 자식이, 교육운동하다 해직되어

구설수에 오르자 화병이 나서

곡기 끊고 막걸리만 마시기를 몇 년, 하셨다던

친구의 아버님이 가셨다

      

얼굴이 소년처럼 맑아서 연세 팔십이 믿어지지 않던

그 분의 한 생애가 잘 보이는 초곡 마을

눈감고도 오르내리시던 산길 끝, 그 뒷산에, 누우셨다

멀리 확 트인 앞쪽, 나지막한 산허리 들판 사이로

닷새에 한번으로 드나드시던 아랫장터나 감호시장 부근쯤 될

김천 한 자락이 언뜻 보이기도 하는 양지 솔밭에

김 시인의 아버님이 누우셨다


호상이라고, 마을에서 잡은, 비계가 겁나게 달린 돼지고기

한 입씩 꾹꾹 씹으며 소나무 그늘에 퍼질러 앉은

생이* 메고 온 마을 사람들, 이곳 토박이 김 시인의 초중고 동창들

영안실에서 늦도록 술 마시다 눈 잠깐 붙이고 온 우리 동인들과

어허 달구, 같이 하고 쐬주 막걸리 나눠 마시면서

나는 마음으로 축하드렸다


-축하드립니다 

-한 세상 잘 사셨습니다. 시인의 아버님

     

대학 다닐 땐 이름 없는 교사가 되어 어쩌고 하더니

시대를 잘못 만나 시인이 되고 이름난 참교육 선생이 돼버린

당신의 아들, 남모르는 자랑도 되고 가슴 움푹 패인 상처도 되었을

그 아버지의 아들이 오늘 상주 되어 사람들 틈에 우뚝 서서

굴건제목에 대지팡이 짚고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 마을 축제가

참 엉뚱하게도 나는 왜 그리 부러웠는지 몰랐다


내려오는 길, 은은한 가을 하늘빛이 뚝뚝 듣는 산모롱이

흙으로 돌아갈 날이 머잖은, 풍채 좋게 휘어진 적송 한 그루보다

그 곁에 아직 창창 푸를 나이에 누렇게 뜬 솔 한 그루에 눈이 갔다

아, 아버지- 당신도 시인의 아버지셨는데

아름으로 둥글어 보지도 못하고 백 리 타관에서 너무 일찍 떠나가신

  

내 아버지……



* 김고 : 김천고등학교

* 생이 : 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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