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황학주

 

 

그 해 여름

 

 

 

멀리 간 날이었다

무서우리만치 많은 나무들이 몰려왔다

다함이 있어야 혼이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박물관 앞에서 여자를 처음 보고서

눈을 감았다 뜰 때 아주 먼 시간이 어둔 화덕에 피어 있었다

찌그려 신은 한 켤레 시간을 세족시키며

여강(驪江)가 꽃 피듯 일없이 여자가 앉았다

무슨 물고기를 먹은 그 오후와 저녁 사이

그 식당은 지금 없어졌다 침이 마르듯이

 

낌새가 없는 일이었지만 식당 뒤

공사장 붉은 흙더미와 고랑 건너 흑백 어딘가에

수줍은 중년이 어떻게 손을 들고 있었나

오색을 다 내줘버린 자작나무

몸 떨군 가장자리로 가만가만 가져가는

저녁처럼 여자 혼자 살고 있는 곳

이승에서 하루쯤이면 갈 수 있는 곳

요행히 떠나면 잊을 수 있을 듯도 해

그 한나절은 기념이 되었다

 

알 수 없었지만 다함이 있어야 한다는 걸

여자가 눈짓해 준 그 해 여름

 

 

 

어느 날

 

 

 

고엽 깔린 어슬핏한 길을 내려오다

몸에 의자 하나를 놓는

상처

살그머니

가다만 상처

 

새소리가 되었을지

꽃도 야위고, 어린 새가 있었을까

 

몸 숙여 앉아 본다

마음을 얻으려는 엉성궂은 연인처럼

 

반날 사이

조심스레 우표를 붙이고 뗐던

흔적이 있는

숲길

혀를 차며

 

고엽 깔린 길을 내려오는

빈 의자

헐렁해진 목발 모서리

귀 기울이는 진흙빛 소리들

 

눈 글썽글썽한 일

뜸한

어느 가을날

 

다리 끌어간 자국에

맨손바닥을 내려놓는 갈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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