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이재무



봄밤




시인 박아무개가 지독한

가난에 두들겨 맞고

알콜성 치매에 영양실조에 폐결핵 증세로

중환자실로 들어가 생사 넘나드는 봄밤

면회에서 돌아와 아내 몰래 수음을 했다

더러운 쾌락에 치를 떨면서 결코 울지 않았다

여러 해의 봄이 한꺼번에 흘러갔다

 

영안실 싸늘한 시체가 되어 너는 누워 있다

과거가 되어버린 너에게서

청승과 신파 뒤 술상 뒤엎던 울분과

소리 높여 부르던 단심가 한밤중 전화선 타고

오던 물 젖은 목소리 보거나 듣지 않아도 된 것이다

70년대 상경파의 불운한 생

끈질기게 따라다녔던 꼬리 긴 주소를 지운다

세상에는 어제처럼 눈비 오고

바람 불고 구름이 흐르고 해와 달은 떠서

지며 거듭 묵은 달력 갈아치우겠지만

가던 걸음 문득 세워 어느 한 곳 오래 눈길 머물며

버릇처럼 골똘히 생각 깊은 날 더러 있을 것이다




넘어진 의자




고시원 옥상 위 의자

눈에 밟혀 떠나지 않는다 

지각과 조퇴와 결석을 모르던 저,

우직한 성실과 근면 누가 넘어뜨렸을까

벌집 들고나는 일벌들처럼 붕붕붕

한 평 반 벌방 분주히 오간

누렇게 때 전, 젖어 축축한 생들의 무게가 쌓여

견고한 직립의 고집 쓰러뜨렸을 것이다

자세히 보니 한쪽 다리가 부실하다

이제 의자는 의지만으로

누구의 휴식이나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다

실밥이 터져 새기 시작하는 삶의 포대자루

오직, 묵묵히 견뎌주는 일에만

전념해온 저 순결한 이타를,

그러나 그 누가 있어 기억이나 해줄 것인가

비명도 없이 쏟아지는 비 고스란히 맞고 있는

고시원 옥상 위 의자

일급 장애가 되어서야 

제 육신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유예된 서러운 안식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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