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꽃

 

송종찬



똥꽃




블라디보스토크 저가 항공에 실려 피난열차 같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맞이한 바이칼 호수, 들꽃을 사랑하시는 선생님이 들꽃처럼 멀리 떨어져 엉겅퀴 양귀비 종다리 개망초 시베리아 벌판에 이다지도 이쁜 꽃들이 빨주노초로 피어날 수 있냐며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대신다


바이칼 호수가 한눈에 펼쳐지는 슬루쟌까 언덕, 데까브리스트 반란군을 따라온 예까테리나처럼 눈 내리는 숲 속 한 남자를 사랑한 나타샤처럼 들꽃 같은 여인들이 좌판 위에 내놓은 들딸기를 잡수신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일을 보시다 그만 큰일을 내고 마신다


천지간이 저렇게나 깊어 보일 때가 있을까 캄캄한 푸세식 화장실에 한 점 포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480종의 들꽃들 안타까운 표정으로 디지털시대의 아픔이 아니겠냐며 선생님을 위로하지만 똥 속에 묻혀 있을 형형색색 들꽃들이 까르르 까르르 피어나 입가에 웃음꽃이 번진다


내년 여름에는 디지털 들꽃을 보러 다시 횡단열차를 탈까 영하 사십도 어깨를 짓누르는 시베리아 눈발 속에 피어난 내 마음 속 붉은 엉겅퀴




반야 사우나




글을 쓰는 열 명의 도반들이

반야 사우나에 4 3 3 세 줄로 앉아

용맹정진에 들고 있다

자작나무의 미끈한 종아리를 보고 온 탓일까

자욱한 수증기 속에서

중년의 시인이 선문답을 던진다

스님, 색을 어떻게 참아내야 합니까

술병에서 떨어져 내리는

참이슬 한 방울처럼 칼칼한 입을 적시는 말

色이 지극해야 空이 됩니다

서로 내공을 시험하듯

가슴까지 숨은 턱턱 막혀 오는데

지극하라 지극 지극하라

눈을 감아도 색즉공의 참뜻을 모르겠다

목욕용 수건 아래 가려진 열 개의 極

그 끝을 따라가다 보면

너른 호수가 나오고

구부러진 길가를 서성일 때

은빛 자작나무 회초리가

스치듯 온몸을 때리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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