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기

 

박상수

  


변성기




물감 번지듯 구름이 이동하는 날, 우린 베이킹파우더를 나누어 먹었지 핫케익처럼 조금만 뜨거워졌으면, 고음이 사라진 선율, 끝내 장조로 돌아오지 않을 아카펠라


플란넬 천이, 그 애가 색이 모두 빠져나간 천치 같은 얼굴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우린 잠시 바다거북 몸을 떨며 쏟아낸 알처럼 잔잔해졌지


우리가 바란 건 누군가의 몽정에서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 기어이 서로의 뺨을 때리고 난 뒤 책상에 새겨두었던 이름마저 천천히 희미해졌던 시간들


세 개의 영혼으로 태어나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서로 다른 말을 쓰다가 어떤 날은 똑같이 칫솔질 끝에 피를 흘리고, 맑은 날엔 자스민 화분에 묻혀 꽃이 필 때 영혼도 하늘로 올라가기만을 바라며


기르던 개를 쏘아죽이고 떠나가는 얼굴로 그 애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우린 서로의 언니가 되어 달아오른 왁찐 자국에 입을 맞추었지 작은 발을 떨며 조금씩 부풀어 올랐지


언제나 결말은 바다를 향해 되돌아가다 멈추어선 바다거북, 서서히 눈을 닫는 소리, 모래비가 사각의 건물 위로 쏟아지는 소리


장마가 시작될 것이고 속옷이 젖도록 걸어다닐 것이고 세 개의 영혼은 혼잣말을 하겠지, 팔목시계 스며든 빗방울, 흔들어도 흔들어도 정지해버린 시간.




날짜 변경선




얼어버린 빨래를 걷어다가 아랫목에 두었지만 사라지기 일쑤였다 물 빠진 자국마저 아무렇지 않게 말라버리고 나는 열쇠를 잃어버린 얼굴로 대문 밖에 앉아 있었다 눈녹은 웅덩이에 발이 빠질까 폴짝 뛰어오르면 조금은 날개가 생긴 것도 같았다 거짓말을 믿으며 소망하며 털모자를 쓰고 전봇대와 블록담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었던 아이는 어른 셋이 달려들어서야 목을 빼냈고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오기는 어려운 문턱, 그렇다고 쉽게 울지도 않았다 잔불을 쬐듯 웅크려 지나가는 행인들 따라 걷다보면 손바닥으로 유리창 닦아 내다보는 사람들, 먼지 앉은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걸려 있었다 살얼음 녹았다가 다시 얼어버린 길 위에 서서 더 이상 열쇠의 행방을 묻지 않았다 연통에서 빠져나온 온기를 따라 발자국 돌아보면 거기, 왕겨를 뒤져 마지막 겨울 사과를 꺼내먹던 마음, 사과 안에 박혀 반짝이던 얼음과 눈녹을 때의 그 빛이 또 다른 겨울을 불러오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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