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최승호



거지




지갑이 없다

휴대폰이 없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면

모래알 몇 개

그게 내 전재산이다

나는 지금 가난하다

그렇다고 주머니를 돌멩이로 잔뜩 채운다 해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카드가 없다

현금도 없다

주머니엔 모래알 몇 개

알몸에 옷을 걸쳤지만

나는 지금 거지다

고비사막에 나타난 거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때때로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기도 하는

인생을 모르는 거지

사막을 모르는 거지

바람에 너펄거리는 거지

내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다

그러나 사막은 더 가난하다

사막은 벌거벗었다

게다가 벙어리인 사막

장님인 사막

귀머거리인 사막

나중에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기지 않을까

벙어리 사막을 끌어안고 울었노라




일개미




우리는 사막의 일개미들

일을 해야 먹을 수 있다

사막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일개미의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일이 생겼다

큰 모래들이 집 안으로 굴러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사막의 일개미들

너도 나도 큰 모래를 입에 물어 집 밖으로 던진다

던진 뒤에는 집 안의 큰 모래를 물어 집 밖으로 던지고

다시 들어와서 큰 모래를 입에 물고 집 밖으로 나가 멀리 던진다

우리는 사막의 일개미들

일을 해야 먹을 수 있다

왕은 모르리라

사막이 뜨거워질수록

우리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는 것을

발바닥이 뜨거워도 우리는 일을 해야 한다

허리가 끊어진 뒤에도 남은 일은 해야 한다고

우리는 배웠고 왕은 가르치셨다

오늘은 큰 모래 물어나르기가 일이다

내일은 먹을 걸 찾아 사막으로 나가야 한다

사막에서는 뼈다귀도 귀하다

먹을 것이 없으면 

우리는 버려진 왕의 시체라도 끌고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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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질조각

그런 것을 일기장에 기록하며 , 아주 오래 오래 목숨 시집을 잘 읽었어요. 스물 대여섯살 정도였고,음..목숨이라는 단어를 아주 많이 생각하며 지내던 시절이었어요. 고맙다구요. 그 때 그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