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 外

우대식




詩人

 

        잉크는 새 것이 한 병 새벽 우물처럼

        충충히 담겨져 있것다

         – 이태준 「까마귀」에서

 


헛되고 헛되다

내 안의 포도주가 헛되고

밤 거리의 주막도 헛되다

원주에서 신림(新林)으로 가는 첩첩 산도 헛되고

폭풍전야의 저 구름도 헛되다

어린 날 시골 분교의 방과 후

슬프고 깊은 풍금 소리를 양식 삼아

시인이 되었지만

한낱 떠도는 자의 운명으로 태어났으니 헛되다

하여,

내 안에 먼 기슭을 돌아와 헤엄치는 물고기도 헛되다

나는 정말 숨도 안 쉬고 저 강과 산을

건너고 싶다


 

 



단검

             

 


8월의 염천,

서울역 광장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잠자던 한 할머니가 문득 일어나 앉았다

담배를 길게 빨더니 여기서 가장 가까운 시장이 어디냐 묻는다

남대문 방향을 가르키며 남대문 시장이라 말했더니

가장 큰 시장은 어디냐 물었다

아침 햇살이 얼굴에 쏟아져 몹시 더웠다

남대문 시장이 가장 크다고 일러주었다

어디서 왔냐고 내가 물었다

수원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순간 수원시가 아니라 수원부와 같은 조선 후기 지명으로 받아들였다

무엇을 사려고 그러냐 물었더니 무엇을 팔려고 한다고 하였다

신문지에 둘둘 싸고 다시 보자기에 싼 뭉치가 하나 옆에 놓여 있었다

뭔데요

몰라도 된다고 대답할 때는 마치 함흥 사투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차라리 동대문 벼룩시장 같은 난전에 물건을 펼치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럴 물건이 아니라고 화를 냈다

뭐냐고 다시 물으니 할머니는 일어서며 말했다

칼이다 이눔아

서울역에서 지하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남대문을 향하고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잠자던 한 자루의 단검이 꼿꼿하게

한성역 광장을 건너고 가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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