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別曲

 

한용국



목련, 別曲




애인아

떨어지는 목련을 보아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랑의 자전을 보아라


소풍 가자

소풍이나 가자

꼬리를 붙들고 맴맴맴

창문 너머로

목련 그늘 아래로


샥옥셤셤 솽수길헤


보아라

존나와 씨발 사이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은

목련 속을 뛰어다니고


늙은이들은

약간의 피로와 욕정이

생의 전부였음을

중얼거리며

벌어지는 목련송이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니


샥옥셤셤 솽수길헤

샥옥셤셤 솽수길헤*


떨어지는 목련을 보아라

애인아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월의 서글픈 자전을 보아라


*고려가요 「한림별곡」 제 8장의 후렴구 인용




봄 여름 가을 겨울



1.


애인은 침대에서 다리를 찢었다 면벽하는 방아깨비처럼

끄덕거리며, 애인의 다리가 조금씩 양갈래로 찢어질 때

느닷없이 4월이 오고 벽지 속에서 다족류들이 기어 나와

손에 손 맞잡고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나는 다리를 찢는

애인 옆에서 책을 읽었을 뿐인데 손가락은 어디 있을까

다족류들은 이국적인 스텝으로 침대 위에서 춤추는데

나는 침대에서 튕겨져 나오고 애인의 다리는 벌어지고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애인아 내 손가락을 돌려줘


일렬로 선 나무들도 다리를 찢고 있었다 애인아 저것 봐

이파리도 없이 마른 사타구니에서 하얀 꽃이 피어오르네

내던져진 책 속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공관처럼

창밖으로 소리를 증폭시켰다 하얀 꽃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추고 있었다 다족류들이 성급하게 벽 속으로 퇴장했다

내 손가락은 어디 갔을까 애인아 이제 네가 노래할 시간이야

나는 아직 다리를 더 찢어야 돼, 갑자기 형광등이 꺼졌다


2.


애인은 먼 곳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잘린 손가락을 들고

밤거리에 서 있었다 어느 의사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았고

여자들은 뭉툭한 내 손을 바라보며 저희들끼리 수군거렸다

애인은 먼 곳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손가락들은 저희들끼리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따라해 봐요

발가락들이 스텝을 맞추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활자들이 솜뭉치처럼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경쟁이 치열했다 다리를 다 찢은 나무들이

흰 꽃을 다 버린 나무들이 푸른 잎들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애인은 먼 곳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자라지 않았다

웬디 웬디 내 그림자에도 손가락이 없어 다시 꿰매줘야 해

웬디 웬디 내 몸은 어디 간 거야 왜 그림자만 걸어 다니는지

잘린 손가락을 들고 밤거리에 서 있었다 푸른 뿔 모자를 쓰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우고 싶었다 얘들아 안 돼

엄마를 잃어버린 뒤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형벌을 받는단다

아이들은 울면서 되돌아갔지만 엄마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너희들은 네버랜드로 가야 해 내가 달을 가리켰을 때

아이들은 달 속에서 방아를 찧고 있었다 애인아 저기야 저기


3. 


빗속의 방에 애인과 함께 있었다 애인은 물이 되고 싶어하고

나는 애인의 몸살 속으로 들어가 꽃 한 송이를 들고 나왔지만

사월에 펼쳐 놓은 페이지는 누렇게 빛바래 있었다 여백에서

다족류들의 시체가 자꾸 기어 나왔다 애인아 니가 피운 꽃이야

목이 잠긴 애인이 노래를 불렀다 너무 많이 익어버린 열매들이

빗속으로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줍지 마 모든 게 불길해질 거야

이제 형이 노래할 차례야, 하지만 나는 페이지를 넘길 수 없지

난 그림자를 꿰매 주었는 걸, 그림자는 악력을 지니지 못한단다


빗속의 애인의 창문에 플라타너스 잎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떤 잎도 수직의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추억조차 비스듬히 기울고

애인은 웅크린 채 방을 둥글게 말아내고 있었다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조용히 애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신민의 세월 속에서 나는

침대 위에 무대를 세웠다 천막을 걸자 애인은 다리를 찢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잎들도 있어 골반뼈까지 찢어야 할까봐

앙상블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형이 옷을 여러 번 갈아입으면 돼

눅눅해진 벽지의 무늬 속에서 다족류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4.


개와 늑대의 시간이 왔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내년은 흉작이라고 모자를 쓴 신사가 투덜거리며 지나갔을 때

애인은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노래했다 난 쓰레기들을 경멸해

신사는 무릎 꿇고 앉아서 애인의 발에 골고루 침을 뱉었다

애인이 굽 높은 구두를 벗었다 구두는 슬쩍 나방이 되어 날아가고

행인 몇몇이 헛것을 본 듯이 신기해했다 너희들이 믿는 것이란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나는 무릎을 꿇어 경배하고 싶었지만

담배를 끊지 못했으므로 금방 사고의 혁명적 전환을 시도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왔다 발가락을 사용해 페이지를 넘겨보면

무구한 검은 음표들의 밤 노래를 품은 눈송이가 천만 개도 넘었으므로

나는 다족류들을 몰고 벽지에 어린 얼룩 속으로 들어와 앉았다

나는 원래 천막이었어 순교의 주제를 구현하는 사방무늬가 될 거야

다리를 다 찢은 애인이 내 두 귀를 잘라 양손에 들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얼룩에도 꽃필 날 있겠지요 살다 보면 얼룩에도 꽃필 날

옆에서 다족류들이 스텝을 밟고 있었다 우쭐우쭐 한 시절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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